<월.E>를 보기 전엔 그냥 귀여운 깡통 로보트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월.E>를 본 후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월.E>는 2008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월.E>를 보기 전엔 그냥 귀여운 깡통 로보트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월.E>를 본 후 고쳐 생각하기로 했다. <월.E>는 2008년 최고의 로맨스 영화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남자가 밤에 꿈을 꾸면 여자는 남자가 꾼 꿈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긴다. 꿈에서 남자가 교통사고를 내면 여자는 몽유상태로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남자의 꿈은 여자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비몽>의 스토리 구조는 대략 이렇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정신병원에서 자살을 하면서 나비로 변한다. 나비는 어느새 언 강 위로 뛰어내려 자살한 남자의 이마 위로 날아와 앉는다. 이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장자의 <호접몽>이 떠오른다. 나는 과연 나비인가? 사람인가? 남자의 꿈은 남자의 꿈인가? 아니면 여자의 현실인가? 꿈과 현실의 경계. 그 모호함에 대해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항상 꿈만 꾸며 환상을 보며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에 타협하는 삶은 사는 게 좋을까. 꿈을 깨면 현실은 지옥이 되고, 꿈만 꾼다면 현실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마는 아이러니. 분명 쉬운 선택은 아니다.
*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항상 그렇듯이 이 영화는 전혀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만든 15편의 영화중 손에 꼽을 만큼 비상업적인 작품인 것 같다. 그만큼 마이너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다. 굉장히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화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는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극소수의 매니아적 취향을 가진 이들에겐 당연히 권할 만하다.
나는 원래 드라마를, 아니 TV 자체를 잘 보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사세'는 정말 오랜만에 나를 TV 앞에 앉게 한 드라마였다. 처음에 나는 2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우연히 신문에서 그 드라마에 관한 기사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됐다. 2회를 본 후 나는 그대로 '그사세'의 팬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1회도 VOD로 챙겨보게 되었고, 생방을 볼 수 있으면 닥본사했고, 생방을 볼 수 없으면 VOD로 봤다.
'그사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다. 명품 드라마의 반열에 올려놓는 사람(나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없고 따분한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그사세'는 잘 만든 드라마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는 것이다.
'그사세'의 팬으로써는 그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팬층과 오버그라운드 가수의 팬층의 두께가 엄연히 다르게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사세'가 끝났으니 언제 다시 TV 앞에 앉을 지 모르겠다. 내 방엔 TV도 없는데.
* 결국 인생은 모두 전쟁이구나. '그사세'를 보며 느낀 것은 그것.
버전 1
"이봐요, 아가씨. 시간 있으면 차나 한 잔 어때요?"
버전 2
"야, 너 몇 살이냐? 따라와 잇. 내가 찍었어."
버전 3
"저...저 저기요. 그 그러니까 제가 그 쪽을..."
*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은 참 많은 버전들로 가득 차 있다. ㅋ

지난번에 3G 휴대폰을 사면서 이제 내 인생에 mp3p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휴대폰으로도 거의 모든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mp3, 사진, 동영상 이 모든게 휴대폰 하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휴대폰은 그저 통화와 문자에 적합한 것 같고 음악이나 동영상은 아직까진 mp3p가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속도와 성능, 음질 등에서 휴대폰은 mp3p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십만년 만에 mp3p를 하나 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괜찮은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출시되면 살까 말까 고민중인데 아무래도 사게 될 것 같다.
내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저녁을 먹고 나니 창밖으로 보이는 지붕들 위로 한케 눈이 쌓여있는 게 보였다. 더 기다릴 것도 없었다. 나는 작은 캠코더를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눈오는 풍경을 담을 생각이었다.
풍경1
내가 밖으로 나오자 더 많은 눈이 쏟아져 내렸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패딩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눈이었다. 우선 나는 근처 공원으로 가서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내리는 눈을 카메라에 담았다. 벤치 위에 쌓인 눈, 그리고 벌써 누군가 만들어 놓고 간 미니 눈사람도 찍었다. 솔가지 위에 솜처럼 얹혀 있는 눈들도 카메라에 담았다.
풍경2
공원의 후미진 곳을 걷고 있을 때였다. 나무들 사이에 두 개의 그림자가 포개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와 여자의 실루엣이었다. 둘은 막 키스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머리 위로는 색종이 가루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걸었다.(아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를 의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저 앞에서 어떤 여자 둘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이리로 오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실례지만. 이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예? 왜요?"
"아까 보니까 바바리 코트 입은 남자가 있더라구요. 딱 보니 변태더라구요. 눈빛이 완전 썩은 동태눈깔이에요."
"어머, 그래요?"
"예. 그랬다니까요."
이렇게 난 두 남녀에게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내가 옛날에 들었던 아침 라디오 프로의 사연은 이런 것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한 여자가 옛날 자기 오빠가 자주 들었던 음악을 신청한다는 엽서였다. 그녀의 오빠는 소위 음악광이었다. 오빠의 방에선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음악소리는 문지방을 넘어 그녀의 방에까지 흘러들어 오기 일쑤였다. 그 중년의 여자는 그때 자주 문지방을 타고 넘어들어왔던 곡을 신청했다. 오빠가 좋아했다던 곡이라면서. 무디 블루스, 카멜, 산타나 이런 뮤지션들의 곡이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다.
그녀는 엽서의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명절때 만난 오빠에게 "오빠, 요즘엔 음악 안 들어?" 이렇게 물었더니 그녀의 오빠는 "음악은 무슨 사는 게 바쁜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내용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세월이 흐른 후에 내 동생도 중년이 된 그 여자처럼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튠어라운드'가 서비스를 확 접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클릭해 봤더니 화면엔 사이트를 못찾겠다는 메세지만 떴다. 당연히 그동안 만들어서 올려놓은 곡들도 다 사라졌다. (어떻게 사이트를 그렇게 깔끔하게 접을 수 있는지...;;)
튠어라운드랑 비슷한 사이트를 찾아봤다. 어렵지 않게 '뮤직쉐이크'라는 사이트를 찾을 수 있었다. 사용법은 튠어라운드랑 비슷했는데 마디와 마디 사이가 좀 더 길어서 튠어라운드보다는 세밀한 작업에 있어서 약간 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어디까지나 초보자의 소견) 게다가 저장한 곡을 다운로드 받는데 500원을 지불해야 했다. 튠어라운드는 무료였는데 말이다.
1.
어제 저녁, 갑자기 쵸코파이와 우유가 먹고 싶어졌다. 우유와 쵸코파이는 예전에 유치원에 다닐 때 자주 간식으로 나왔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우유와 안에 마쉬멜로가 들어있는 달콤한 쵸코파이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쵸코파이는 단 한 개였다. 우유도 마찬가지로 각자 한 잔씩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먹었던 것 같다. 나는 아마 그때 그 맛에 대한 느낌을 떠올렸던 것 같다.
2.
군대에 있을 때 자판기 커피는 한 잔에 100원이었다. 나는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이 되면 거의 매일 한 잔씩의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셨다. 아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때 내 짬밥은 아마 일병 이호봉이거나 삼호봉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어김 없이 100원짜리 동전을 자판기에 넣고 커피 한 잔을 뽑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금세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군생활을 통털어 나를 가장 따뜻하게 대해준 이는 아마 그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였을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역 안. 수많은 인파속에 댄디 스타일의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유독 눈에 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그 남자는 애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와 걷고 있는 여자친구 역시 막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온 연예인인 것처럼 예쁜 외모를 갖고 있다. 멋진 이 두 남녀는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한 남자와 부딪힌다.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는 여느때처럼 별볼일 없이 역안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저 앞에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멋진 남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이 별볼남은 조금은 부러운 시선으로 또 조금은 시기심어린 시선으로 점점 가까워오는 남녀를 바라본다.
별볼남이 넋놓고 두 남녀를 바라보는 사이 멋진 남자가 별볼남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순간 별볼남은 열등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별볼남은 상대에게 대들만한 용기는 없다. 별볼남은 그저 멋진 남자를 한 번 째려보는 것으로 자신의 성깔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멋진 남자 역시 별볼남을 무섭게 노려봤기 때문이다. 깨갱깨갱. 별볼남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별볼남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 건 자신을 노려본 멋진 남자보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별볼남이 고개를 숙일 때 벌레를 대하듯 양미간을 찌푸린 여자의 표정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역을 빠져 나온 멋진 두 남녀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둘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여자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켰다. 실내엔 경쾌한 라틴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두 남녀가 각자의 잔에 담긴 커피를 반쯤 비웠을 때 카페 안으로 어떤 남자가 들어섰다. 그 남자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린 후 멋진 두 남녀가 있는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남자는 바로 별볼남이었다. 별볼남은 뭔가를 감싸안은 듯 한 팔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테이블 앞으로 다가온 별볼남에게 멋진 남자가 물었다. 멋진 남자는 정말 별볼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빚 갚으러 왔다. 움직이지 마!"
별볼남은 가슴에 품었던 권총을 멋진 남자에게 들이댔다. 총구는 정확히 남자의 이마를 향하게 했다. 남자의 여자친구가 비명을 지르자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들도 상황파악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다들 조용히 해!"
순간 카페안은 침묵이 흘렀다. 음악도 누군가 꺼버린 모양이었다. 카페 안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뻥끗대는 놈있으면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이마에 권총을 들이댄다면 개처럼 엎드려 신발이라도 핥게 할 수 있다.
"너, 무릎 꿇어! 어서!"
별볼남은 총구를 위아래로 흔들며 멋진 남자에게 명령했다. 멋진 남자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이리 기어와서 혀로 내 신발을 핥아."
별볼남은 더욱 더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 멋진 남자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겁은 났지만 멋진 남자는 잠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 안의 모든 시선이 무릎꿇은 멋진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볼남의 요구대로 혀로 그의 신발을 핥는다면 멋진 남자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 말 안 들려 새꺄!"
별볼남은 즉시 검지손가락을 방아쇠에 갖다대며 위협했다. 멋진 남자는 이제 더이상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못하다간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는 별볼남의 신발을 핥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저거 가짜 총 아닐까?' 혀로 별볼남의 신발을 핥던 멋진 남자의 뇌리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유는 알 순 없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멋진 남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이새끼, 그거 가짜 총이지?"
멋진 남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별볼남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용기는 냈지만 멋진 남자는 속으로 엄청 떨고 있었다. 만약 진짜 총이라면 그대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볼남의 행동은 뭔가 미적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 진짜 총야 임마. 까...까불지 마."
별볼남은 한 발짝 물러서며 말까지 더듬었다. 그제서야 멋진 남자는 총이 가짜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뻥쳐. 그거 가짜 총 맞구만!"
멋진 남자는 재빠른 동작으로 별볼남을 제압했다. K-1 선수처럼 손으로 힘껏 별볼남의 목을 휘어감았다.
"야, 이거 안 놔! 아, 아퍼 아퍼."
멋진 남자는 주먹으로 연신 별볼남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럴 때마다 별볼남은 죽을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 아퍼. 거기 혹혹. 아아, 이새끼가 때린데 또 때리네...아, 아야!"
카페 안은 어느새 별볼남의 비명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별볼남이 멋진 남자에게 두들겨 맞을 때마다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며 응원하기도 했다.
힘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힘은 이동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그리고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블로그라는 것이 몇년 동안을 잘 꾸며왔더라도 한 순간에 '폐쇄 버튼'을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다. 한 묶음의 비밀 일기장을 아무런 미련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에 집어던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에겐 그만큼 모질고 쿨한 면이 있다.
오늘 새벽 출근 길에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했더랬다. 세상의 모든 낙엽들이 밤사이 우리 동네로 쏟아진 것처럼 도로, 인도 할 것 없이 온통 노란 카펫이 깔려있었다. 낙엽이 깊은 곳은 정말 발목까지 빠지는 깊이였다. 고개를 올려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니 앙상하고 마른 가지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 가지들 때문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나무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문득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미련 없이 모든 이파리들을 떨궈버린 나무들의 기분이 궁금해졌다. 따뜻한 봄에 살을 간지럼태우며 돋아나던 연록색의 기억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푸르게 푸르게 짙어져 갔던 파란 이파리들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있을까. 만약 홀가분한 기분이라면 나무는 무척 쿨한 존재다.
그 궁금증은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지 쓸어도 쓸어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어젯밤에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었다.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잠시 산책을 나서는 중이었다.
내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려 할 때 내 앞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쫄랑쫄랑 걸어오는게 보였다. 강아지는 갑자기 전봇대 앞에서 멈추더니 한쪽 다리를 들고 거기에 영역표시를 했다. 어려서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공중도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강아지에게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얌마, 어디 신성한 길에서 노상방뇨를 하냐! 그것도 형님 앞에서."
나는 강아지가 나의 굵고 힘있는 목소리의 포스에 눌려 꼬리를 내리고 그대로 줄행랑 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짜식, 무섭긴 했을 거다' 그때 내가 해줄 멘트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실제로 강아지는 내가 조금씩 다가오자 몸을 꽤 숙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왈왈 왈왈왈!"
강아지는 나를 향해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짖는 톤 속에는 분명 어떤 감정이 녹아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욕이었다. 나는 은근히 기분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인배인 나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우산을 몇 번 허공에 휙휙 내저었다. 대충 겁을 줘서 내석을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더욱 더 공격적으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내 다리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땐 정말 화가 났었다. 가서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시늉을 했다. 보통의 개라면 겁을 먹고 달아났겠지만 이놈은 좀처럼 도망갈 줄을 몰랐다.
그상태로 한 5분은 흐른 것 같다. 강아지는 맹렬히 짖어내고 나는 "안 도망가? 이걸 확!" 이러면서 말이다.
결과는 나의 처참한 패배였다. 뒤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바람에 나는 강아지를 피해 옆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자기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열이 올랐다. 가서 패줄까 생각도 했지만 걍 참기로 했다.
세상에, 강아지랑 싸워서 지다니!
며칠 전 아침 회사에서 일을 하다 문득 집에 전자 모기향-아직까지 모기가 있다;;-을 켜두고 왔는지 아니면 끄고 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자 모기향은 몇 시간까지 켜놔도 안전할까요?"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최장 12시간까지 켜놓은 적이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내 상황은 만약 모기향이 켜져 있다면 12시간도 훨씬 넘게 켜져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끄고 왔던가. 아냐, 끈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껐을 지도 몰라. 그런가? 걍 꺼져있다고 생각할까? 혹시 켜져있으면? 불까지는 아니더라도 탄 냄새는 나겠지. 갔다 올까. 너무 귀찬잖아. 하지만 점심시간에 잠깐 갔다와도 되잖아.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불안한 것 보단 낫잖아.
그렇게 해서 나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하게 됐다. 문을 열고 모기향의 전원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전원의 빨간불은 켜져 있었다. 나는 아예 코드까지 뽑아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내 불안의 전원이 스르르 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는 <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책이 있다. 실비 제르맹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처음엔 그냥 책 제목이 나쁘지 않아서 골랐는데 지금은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읽고 있다. 문장을 한 입, 한 입 씹어먹는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어제 그 책 90 페이지를 읽다가 이상한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우선 페이지 우측 하단에 적힌 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실 그는 손만 가진 손과의 연애.
그 손은 때때로 그에게서 뚝 떨어져 나온다. 그 손은 그의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그의 삶을, 활력을, 열정만을 증명한다.
처음에 나는 책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누군가 그대로 옮겨적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책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창작해 낸 글인 것이다. 글의 내용도 그렇고 글씨체를 봐서도 어떤 여자의 솜씨가 느껴졌다.
그 여자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혹시 이 낙서를 직접 쓴 사람이거나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 우체국 사서함 78-5로 엽서를 보내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 사실 이런 낙서를 만나는 건 즐거운 일.
다섯에서 여섯 개의 돼지 피부가 붙은 살점만 걷어낸다면 순대국은 그런대로 먹을만한 음식이다. 잘만 먹으면 굉장한 보양식, 영양식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순대국에서 최소 다섯에서 여섯 개 정도의 살점을 빈그릇에 걷어내는 이유는 살점에 붙은 돼지털을 끔직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이 가는 살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그것을 형광등 불빛에 비춰 신중히 바라본다. 미세한 털의 윤곽이 내 망막에 비치는 순간 그것은 가차없이 빈그릇으로 옮겨진다.
털없는 돼지를 발명한다거나 돼지에게 박피수술을 한다면 순대국 먹기가 좀 더 수월해지겠지만 현재로썬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든 내게 순대국은 약간의 수고로움과 약간의 뜨거움을 감내하며 먹는 음식이다.
순대국을 처음 먹어본 것은 군대에서 첫휴가를 나왔을 때다. 그때 부대에 나름대로의 전통-아마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일 듯-이 있었는데 휴가 출발하는 날 휴가자 중 가장 고참이 후임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것이 그것이었다.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휴가 출발하는 날은 순대국에 소주 또 휴가 복귀하는 날은 삼겹살에 소주였다.
입술물집이 생겨버렸다. 좀 어려운 말로 이것을 구순포진이라고 한다. 구순포진은 입술에 작은 물집이 방물방울 생기는 병을 말한다.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할 때 생기기 쉽다. 특히 요즘처럼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환절기에 걸리기 쉽다.
구순포진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고 한다. 바로 내 경우가 그렇다. 유전적으로 구순포진에 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래부터 우리 집안의 유전자가 구순포진에 약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한 조상님 탓에 우리 집안의 유전자는 구순포진에 약해지고 말았다. 나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그때의 이야기를 대충들어 알고 있다. 그일은 몇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날도 우리 조상님은 저녁을 먹고 동네 어귀에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행차하셨다고 합니다. 옆동네에 사는 아름다운 그의 여친을 기다리기 위해서였죠. 이윽고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조상님의 여친이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왔죠. 조상님은 그녀가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헌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조상님의 여친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도 안 마주치고 자꾸만 조상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었어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조상님은 물었죠.
"아니, 낭자 오늘은 왜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거요? 내 얼굴이 보기 싫소?"
"어머,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밤낮으로 보고 싶은 그 얼굴이 보기 싫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인 걸요."
하지만 조상님의 여친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대꾸할 뿐이었죠. 조상님은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면 대체 왜 자꾸 고개를 숙이고 나를 피하는 것이요?"
"실은..."
"실은...무어란 말입니까? 사랑하는 낭자, 어서 말해 보세요."
"실은 입술물집이 나버렸지 뭡니까. 의원이 그러는데 다른 이에게 옮길지도 모른데요. 그러니 오늘은 키스하면 아니되옵니다. 가까이 다가와도 아니되옵니다."
"허허허,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시오. 어서 이리 오시오."
조상님은 예의 호탕한 그 웃음을 지으며 여친을 힘껏 끌어안았죠.
"어머, 이러시면 아니되어요! 병이 옮을지도...웁..."
여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상님은 찐하게 키스를 해버린 거예요.
그날 이후 우리 조상님과 그의 여친은 사이 좋게 입술물집을 나눠갖게 된 거래요. 그것도 서로 반대편에요. 우리 조상님은 오른쪽에 조상님의 여친은 왼쪽에 훈장같은 입술물집을 한동안 함께 달고 있었던 거죠.
그 후로요? 맞아요. 그후로 우리 집안은 입술물집, 즉 구순포진에 약한 유전자를 갖게 된 거죠.
단종은 수양대군에 의해 이곳 영월땅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된다. 그당시 영월은 전체 인구가 700명 안팎일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게다가 청령포는 뒤로는 큰 산과 앞과 옆으로는 강으로 막혀있어 섬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단종은 근처에 있는 소나무 기둥에 앉아 한양쪽을 바라보며 자주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때로는 통곡하며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이 자주 걸터앉았던 그 나무는 단종의 고통을 함께한 나머지 기형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단종의 슬픔을 곁에서 지켜봤다고 해서나중에 '관음송'이라고 이름지어진 그 소나무는 정말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권에 눈이 먼 숙부에게 사약을 받고 죽어야만 했던 그의 기구한 인생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종의 운명보다 시녀들의 운명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단종에 집중했지만 나는 시녀들의 삶에 집중한 셈이다. 단종의 운명이 기구하긴 하지만 어찌됐건 그건 자기 집안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시녀들은 그 싸움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녀들은 한창 나이에 단종과 함께 이곳 청령포로 유배를 온다. 유배지에서 그녀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 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바느질, 청소, 땔감준비, 식사준비. 근처에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유배지에서 쌀과 반찬은 어디서 공수해 오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유배지라는 특성상 맘편히 웃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종이 죽은 후에 강물에 몸을 던져 도리를 다했다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조선왕조 500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권력을 향한 탐욕과 암투가 심했던 500년이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삶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생이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계의 힙합 전도사 둘을 소개합니다. (아는 게 단 둘 뿐이라.^^;)
먼저 삼성의 안지만 선수. 헤어 스타일도 그렇고, 모자도 그렇고 완전 힙합 스타일이죠. 원래 힙합을 좋아하는지 그냥 컨셉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언뜻 보면 정준하를 연상케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선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마크 크룬. 아무래도 마크 크룬 선수가 힙합적인 분위기를 좀 더 많이 풍기는 듯 합니다.
안지만, 마크 크룬 둘 다 투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이는 딱 열 살 차이가 납니다. 안지만은 83년생, 마크 크룬은 73년생. 나이와 리그는 달라도 스타일은 하나입니다. 힙합.

퇴근 무렵이면 몸은 피곤해 지고 마음은 몽롱해 지기 마련이죠. 오늘도 그랬는데요. 신호등을 기다리는 인파 속에 섞여있다가 문득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는 게 재미없고 우울한 기분이 급습을 한 거죠.
그럴 땐 기분전환을 할 뭔가를 찾게 됩니다. 음악, 영화, 운동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오유'를 찾았습니다. 사실 오유 베스트 유머를 한RSS에 등록해 두었기 때문에 클릭 한 번이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거기서...
http://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5481&page=1&keyfield=&keyword=&sb=
이정도면 대박 아닌가요?^^

'노력은 꿈을 운반해 온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가장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공상과학과 로맨스라는 장르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 영화는 보름달처럼 환하게 전류가 흐르는 꿈을 전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미래의 통신수단에 관한 소설을 써서 스승에게 보여준다. 꽤나 자신있게 내민 소설이었다. 하지만 스승은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내민 소설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고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그는 끝내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소설을 쓰게 됐을까? (여기까지. 그건 영화를 참조.^^) 아무튼 그 질문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할 일에 대해 묻는 것과 일맥상통.

현재 도쿄에 살고 있는 한 소녀와 백년 전 도쿄에 살았던 소년이 우연히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게 된다. 이것은 시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성은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진 않다. 본격 SF물도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충분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결국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것은 '마음'이다. 백년의 시간을 일초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게 만드는 간절한 마음. 그런 마음이라면 백만년 떨어져 있어도 그사람의 심장박동이 전해지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세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이 소설 읽기를 조금 전에 끝마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정말 재밌다.
이 소설의 첫 장은 '구독취소'라는 제목을 단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된 것으로 시작한다. 두 번째 장 역시 이메일을 주고 받는 내용이다. 세 번째 장 역시, 네 번째 장도, 다섯 번째 장도 다를 바 없이. 그러니까 소설 전체가 이메일로 이루어져 있다.
가슴떨림, 안타까움, 달콤함, 기쁨, 허무함, 고통, 아쉬움 이런 감정들을 믹서기에 갈아 마셔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들면 될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아쉽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내일 출근 어쩌냐.;;)
1.
참 얇고도 가까운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죽었다는 이유로 유명 여배우는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단 한 마디의 인터뷰도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녀가 그동안 겪었던 시련과 고통에 비한다면 지금 떠도는 유언비어는 그 강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최근에 강한 모성애와 함께 억척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런 이미지의 그녀가 택한 것이 자살이라니...
아마도 최근에 그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서버린 것 같다. 과거의 고통이라는 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퇴적층처럼 쌓인다. 그리고 그 퇴적층은 쌓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국 그 한계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2.
스무 살 여름방학때였나. 그날은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선배 혹은 동기가 무심코 내뱉은 나의 단점이나 약점들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때 정말 변신을 꿈꾸었다. 한 30일 정도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원했었다. 변신. 그때 내 삶의 화두는 단연코 변신이었다.
3.
어제 동기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보는 선배도 있었다. 2년, 5년, 많게는 7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두 가지의 감정이 뒤엉켜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반가움이었고 또 하나는 괴로움이었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동안 나는 예전에 변신을 꿈꾸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변신을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애벌레로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각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괴로웠다.
4.
나를 길옆에 내려 놓기 위해 차가 핸들을 틀었을 때, 택시 한 대가 우리가 탄 차를 거의 스치듯 가까이 지나갔다. 내가 차창을 통해 택시를 노려봤을 때 그 차는 이미 수십미터는 멀어져 있었다. 차에 탔던 우리 넷(선배, 나, 동기, 후배)은 정말 놀랐다. 그 택시와 우리가 탄 차의 경계는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만큼이나 가까웠었다. 운명이 우리들을 삶의 경계선 안쪽으로 밀어넣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살면서 내가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신호라고 여기기로 했다.
뉴스입니다. 배우 박예진 씨가 제17대 바탕화면 모델로 발탁되었습니다. 1일 바탕화면 모델 선정위원회에 따르면 박예진 씨의 청순한 외모와 백치미를 높게 인정해 제17대 바탕화면 모델로 선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박예진 씨는 나오미 와츠, 밀라 요보비치, 제이첼 리 쿡 같은 쟁쟁한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데요. 앞으로의 활약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자 : 박예진 씨, 그 까다롭다는 제17대 바탕화면 모델로 선정되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박예진 : 헤...머... 안 가르쳐줄래여.
기자 : ^^;;
* 발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
펄펄 끓는 물주전자의 물을 머그컵에 따를 때 주전자에서는 기차소리가 들린다. 오랜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면서 쉬익- 하는 흰 김을 내품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다. 나는 그 물주전자의 물로 헤이즐럿 커피를 타마신다. 내가 마시는 커피에서 옛날 디젤 기관차의 맛이 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기차소리의 여운은 남는다. 그러니까 나는 커피를 마실 때 기차소리까지 마시는 것이다.
사실 내가 쓰는 물주전자는 한 사람 분의 커핏물을 끓이기에는 너무 크다. 또 모양이나 색감이 예쁜 것도 아니고 군데군데 많이 낡아있다. 하지만 난 당분간 주전자를 새로 살 계획이 없다. 지금의 기차 화통 소리를 내는 주전자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1.
어렸을 때는 개구쟁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이 사실이 믿기 힘든 모양이다. 나처럼 젠틀하고(?) 지적인(??) 사람과 개구쟁이는 잘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내게 묻는다.
"아니, 그럼 어쩌다 성격이 그렇게 변한 거예요?"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한 소녀를 알게 되면서 부터였죠..."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자꾸 그 말을 하다보니 '정말 한 소녀를 안 후부터 내 성격이 변해버린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사실 나는 내 성격이 변한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그 일이 있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 일은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어느 저녁에 불현듯 일어났다. 나는 그때 그 일이 내 인생을 완전 바꿔놓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입을 꼭 닫고 있었다. 그 일에 대해 누군가 금지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일에 대해 최초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언제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를 운명을 안고 태어난 셈이다.
2.
그 일이 있던 날 저녁 나는 싸구려 망원경으로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서녘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집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서울과 제주도를 왕복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때도 난 망원경으로 비행기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막 내 망원경 속으로 들어온 비행기 한 대가 공중에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눈을 비빈 후 다시 맨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내 눈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비행기는 분명 공중에 떠있었다.
헬리콥터인가? 내가 아무리 어린 학생이었어도 비행기가 공중에 멈춰 서있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헬리콥터라면 프로펠러가 있어야 할텐데 내 눈에는 프로펠러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정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빛은 직선으로 내려와 땅에 꽂히지 않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레이저 검처럼 어느 부분에서 뚝 끊겨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후레쉬를 하늘에 비추면 그 빛은 일직선으로 우주까지 날아간다고 들었다. 빛은 절대 중간을 자를 수 없다. 나는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 봤다. 젠장, 아팠다. 분명 꿈은 아니다.
3.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아마 평생 그 기억, 그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난 또래 아이들에 비해 약간 더 용감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담담했다.
사실 난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때가 되면 외계에서 나를 데리러 올 거라는 걸 은근히 믿고 있었다.
4.
빛은 어느새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은 순식간에 나를 감싼 것이다. 눈부셨다. 그 빛은 너무 눈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음과 동시에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두려움에 발버둥치지도 않았고 무서워 소리내어 울지도 않았다. 그저 빛에게 내 몸을 맡겼다. 편안했다. 이제야 내 존재가 찬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5.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방이 온통 하얀 방안에 누워있었다. 내 머리 위로는 밝은 빛이 쏟아져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 비행체 안인 모양이었다. 실내의 풍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나를 비행선에 태운 이들은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에서 온 외계인일 것이다. 우리와는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나는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어쩌면 눈이 세 개 이상 달렸을지도 모를 그들.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을 때 내 입에서는 아! 하는 짧은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어떻게 우리의 언어를 알고 바로 통역해서 말을 할까. 내가 또 한국어를 쓴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은 분명 엄청나게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인일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시야에는 온통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서있는게 보였다. 우리로 치면 분명 일반적인 미인의 외모였다. 하지만 난 직감적으로 그녀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몸에선 빛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느별에서 오신 분이세요?"
나는 그 외계인에게 물었다. 외계인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언젠가 꿈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미소였다.
"제가 왜 누워있는 거죠?"
나는 다시 한 번 외계인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외계인은 입을 열었는데, 그때 외계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기절하셨어요. 번개치는 걸 보고 기절하신 거예요. 잠시 정신을 잃은 거니까 주사 한 방 맞으면 금방 나으실 거예요."
6.
주사는 깔끔하게 딱 한방이었다. 주사를 다 맞은 후 내 눈엔 눈물이 핑 돌았는데, 주사가 아파서였는지 아니면 허탈해서였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름의 흐름>이라는 일본 단편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평범한 교도관의 일상을 다룬 소설인데, 어느 날 주인공이 흉악범을 사형집행하게 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 흉악범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엄마"였다. 사형집행이 있은 후 얼마 뒤에 주인공의 아내는 예쁜 아기를 낳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죽음과 시간의 흐름을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녹여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은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혀버리게 될 자연현상일 뿐인 것일까. 어쩌면 작가는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출근 길에 신호등을 건너다가 갑자기 이 소설이 생각났다. 아직 가을이란 느낌은 없다. 여전히 여름이 흐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여름도 곧 모두 어딘가로 흘러가버리겠지만. 시간은 눈에 보일 만큼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 '내그림' 폴더에 있는 사진 다 날라간 거?
늦잠에서 겨우 깨어나 멍하니 앉아있는데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어제 집에 있던 컴퓨터가 문제 있어 윈도우를 다시 깔고 드라이버도 다 새로 깔았다. 당연히 '내그림' 폴더에 있는 파일들도 용가리 통뼈가 아닌 이상 남아있을 리 없었다.
- 응. 전부.
답문을 보냈더니 부리나케 또 답신이 왔다.
- 미치겟네. 어린이집 앨범 꾸밀 사진 거기 다 있는데..-_-;
불행하게도 컴퓨터에 중요한 사진이 들어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파일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짧았던 추석연휴는 끝이 난 것을. 이틀 동안 마신 술의 여파로 몸이 피곤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xxx씨 친구예요."
얼떨결에 전화통을 붙잡은 나는 그렇게 인사를 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그쪽과 곧 결혼을 할 거라는데...사실인가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잘 모르겠는데요. 친구의 여자친구는 수줍은 듯한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말하는 뉘앙스로 봐서 결혼하긴 할 모양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친구에게 "야, 잘 모르겠다는데? 너 혼자 김칫국 마시고 있는 거 같아"라고 놀려주었다. 그리고 통화를 계속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 친구는 그쪽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고 있다는데 그쪽은 어떤가요? 제 친구를 사랑하시나요?"
"음...글쎄요." (역시 웃음)
통화는 그렇게 끝이났다. 친구의 여자친구는 수줍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분명 긍정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결혼 전까지 오늘의 통화내용을 두고두고 놀려먹을 작정이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기로 내 친구와 그녀는 천생연분인 듯싶다. 무뚝뚝하고 두리뭉실한게 둘이 성격이 꼭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있다. 나는 우주복을 입고 발사대에 앉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 틈을 이용해 각국의 기자들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기자는 프랑스어로, 독일기자는 독일어로, 일본기자는 일본어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각각의 언어로 대답해 준다. 나와 기자들의 대화내용은 전세계로 생중계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기자가 내게 묻는다.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하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웃음을 지어보일 뿐. 그건 바로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기분은 어떤 건가? 잠시 후면 나 홀로 거대한 우주로 튕겨져 나갈 텐데. 약간의 흥분과 또 그만큼의 두려움과 기대와 아쉬움과 떨림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1분 사인이 들어왔다. 발사대 주위를 빙 둘러쌌던 인파는 일제히 숨을 죽였다. 커다란 전광판으로 59, 58, 57, 56... 매 초마다 숫자가 바뀌어갔다. 하지만 내 기분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10, 9, 8, 7, 6, 5, 4, 3, 2, 1 발사!
내 몸이 총알처럼 튀어올랐다. 발사되는 순간 와!하는 사람들의 탄성이 들렸지만 그 소리는 금세 사라졌다. 나는 너무 빠른 속도로 하늘로 튀어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곧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간다. 우주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잘들 있으세요. 나는 우주로 갑니다.

꽤 오랫동안 잘 가꾸어오던 블로그가 어느 날 갑자기 웹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열심히 구독하던 블로그가 사라졌을 때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블로그를 폐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블로그라는 것을 오래 유지하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블로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대부분은 그럴 때 블로그 폐쇄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한 욕구가 목까지 차오르는 걸 느낄 것이다.
용기가 없어 폐쇄 버튼을 못 누르던 사람도 어느 순간 어떤 감정에 휩싸여 버린다면 간단하게 폐쇄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이다.
비웃음의 거리를 걷는다. 모두가 나를 보고 날카로운 비웃음을 던지며 지나간다. 그들이 던진 비웃음은 예리한 면도날을 닮았다. 비웃음은 사정없이 날아와 나의 가슴에 콱 박힌다. 내 옛날 애인은 새로운 애인의 품에 안긴 채 나를 보며 비웃고 있다. 이윽고 그녀는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귓속말로 어떤 메세지를 전한다.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린다. 그들은 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비웃음을 던진 것이다. 나는 조금 흔들린다. 그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헤어지길 잘 했지. 머저리. 하하. 나는 나에게로 쏟아지는 비난을 등 뒤로 하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당연히 발걸음은 힘겹고 무겁다. 여긴 어쩔 수 없는 비웃음의 거리이기 때문이다.
퉤. 누군가 씹다버린 껌을 뱉었다. 껌은 내 구두 위로 떨어졌다. 더러운 타액이 묻은 껌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껌을 던진 쪽을 바라보니 예전에 나를 존경한다고 말하던 내 후배가 서있었다. 꼴 좋다. 뭘 봐. 후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를 면박주었다. 그는 아주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비웃음의 거리를 걷는다.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모두가 나를 향해 비웃음을 던진다. 어쩌면 나는 비웃음의 거리에서 길을 잃은 듯하다. 하지만 난 절대 죽지 않는다. 꼿꼿이 서서 내 두 발로 똑바로 걸어 이 비웃음의 거리를 빠져나갈 것이다.
1.
컴퓨터는 원래 생산의 도구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 과학자들이 어려운 문제를 연산하는데에 컴퓨터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대부분 소비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컴퓨터를 주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웹서핑을 하는데 사용한다.
2.
나는 요즘 되도록이면 쓸데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아무짓도 안했는데 한 두 시간 그냥 지나가는 건 기본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네이버만 띄워놓고 있어도 아무 생각없이 기사를 클릭하게 되고 거기에 딸린 댓글까지 읽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면 컴퓨터는 시간도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루에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는 취미생활로 또 컴퓨터를 한다. 그러니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3.
문제는 컴퓨터를 너무 소비적인 도구로 활용한다는데 있다. 컴퓨터로 오직 게임, 영화, 음악, 쇼핑만 한다면 그건 너무 공허한 일일 것이다.
적어도 생산적인 측면과 소비적인 측면의 활용 비율을 50:50으로 맞춰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컴퓨터를 생산의 도구로써의 활용을 늘릴 계획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거나 동영상을 만든다거나... 어쨌든 소비적인 도구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도구로 컴퓨터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어떤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 공
색깔 : 빨강
잃어버린 날짜 : 그저께
잃어버린 장소 : 사직공원
공을 잃어버렸다. 언젠가 할인점에서 산 맨유 로고가 박힌 공이다. 그저께 공원에서 갖고 놀다가 그만 세게 뻥 차버리는 바람에 덤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원에 컨테이너 박스가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 공을 차며 볼 트래핑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공의 밑둥을 힘껏 걷어차는 바람에 공이 높이 떠 컨테이너 벽을 넘어가고 말았다.(프리킥 상황이었다면 골키퍼가 손을 댈 수 없는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는 골인데.) 그게 마지막이다. 그 후론 공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제는 비가 와서 찾으러 갈 수 없었고 오늘 가서 다시 찾아봤는데 없었다. 비싼 공은 아니지만 항상 방구석에 있던 녀석이 없으니까 왠지 허전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는 세상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인 것 같다. 마치 나만 들으라고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전 빗소리를 들으며 스낵면을 끓여먹었다. 반찬은 어제 산 단무지 한 접시. 국물은 짜지 않게 스프는 반만 넣었다. 뜨거운 면발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물론 귀로는 빗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감상했다. 내겐 반찬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금요일 특별활동 시간 그것도 첫 째날이었다. 이제 출석은 다 불렀고 "자자, 오늘 이 시간에는..." 하는 담당 셈의 수업시작 사인만을 남겨놓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때 교실 뒷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여학생 하나가 슬그머니 교실 안쪽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교실 맨 뒷자석에 앉은 나는 그 장면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한 두 번은 등교길에서 마주친 것 같기도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두발검사에 걸려서 학생과 앞 복도에서 마주친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낯익은 얼굴이었다.
"야, 너 첫날부터 지각이야."
불행하게도 그 여학생은 담당 셈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담당 셈과 그 학생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담당 셈의 목소리는 전혀 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부드럽고 장난기가 섞여있었다.
교실에 앉아 있던 학생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여학생에게로 향했다. 안 그래도 붉그스름하던 그애의 볼은 볼터치를 한 것처럼 더욱 붉어졌다.
"너, 벌칙으로 노래 불러야 해."
담당 셈은 그렇게 겁을 줬지만 난 속으로 '설마 노래 하란다고 하겠냐'고 생각했다. 얼굴을 보니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를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 그 여학생은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스스럼없는 발걸음으로 교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서 부르면 되죠?"
여학생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담당 셈에게 질문을 던지는 용기도 발휘했다.
'어라, 항상 레파토리를 준비하고 다니나? 그럼, 어디 노래나 한 번 들어줘 볼까.' 나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그 여학생의 노래를 기다렸다.
에헴. 목을 한 번 가다듬고 여학생은 노래를 시작했다.
Love of my life, you've hurt me You've broken my heart ~♪
퀸의 <Love of my life>라는 노래였다. 나는 프레디 머큐리가 부른 그 노래가 감미로운 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나 감미로운 곡인 줄은 미쳐 알지 못했다.
그애가 고음부분을 부를 때는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버리는 것 같았다. 창으로는 저녁햇살이 창문을 통해 교실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틀 연속으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하긴 했지만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채로 반수면 상태 속에서 밤을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말이다. 휴일이라면 잠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하려면 꾸역꾸역 잠을 자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누워있자니 별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줄곧 침대 위에서 몸을 뒤쳑여야만 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불면증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 불면증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옛날에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전쟁터에서 총알이 전두엽을 스치는 상처를 입은 후부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는 그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간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은 후 생각을 달리 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그는 잠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렸다. 억지로 침대 위에 눕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로 인해 그는 후에 큰 성공을 이루게 된다. 성공을 이룬 후에도 그는 여전히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척 건강했다.
어쨌든 성공은 못 하더라도 오늘 밤엔 꼭 깊은 잠을 자리라.

처음 방망이에 공이 맞았던 몇 초 동안은 그 누구도 명확히 뭐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단지 그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딱! 하고 방망이에 맞은 공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는 것 뿐이었다. 갑자기 공이 하늘로 튀어오른 탓인지 카메라는 잠시 공의 위치를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곧 카메라는 공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었다. 카메라가 공의 위치를 겨우 따라잡았을 때 카메라 앵글에는 이미 외야 관중석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공이 담장을 넘어갈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다. 일본팀의 외야수는 공이 자신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오길 잔득 벼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외야수는 공을 잡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이 담장을 넘어 관중석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공은 마침내 자신의 오랜 비행을 마친 끝에 일본 관중석 한 가운데로 뚝 떨어졌다. "난, 홈런이야." 공은 그제서야 얄굳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아름다운 아치였다. 그 공의 궤적은 베이징 하늘에 그려진 가장 아름다운 아치였다. 그 아름다운 아치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이. 승. 엽. 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TV로, 모바일로, 인터넷으로 공의 발사에서부터 착지까지의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공은 수많은 이들의 염원을 담은 로케트였던 것이다. 우리들의 로케트는 한숨과 눈물과 시련을 던져버리고 베이징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들 가슴 속으로 단숨에 날아와 박혔던 것이다.
아직도 베이징에서 날아온 그 뜨거운 공 때문에 나의 가슴은 벅차다.
애타도록 당신은 레몬을 찾고 있었다.
죽음의 슬프고도 화려한 병상에서
내가 쥐여준 레몬 한 알을
당신의 하이얀 이가 생큼히 깨물었다.
토파즈 빛으로 튀는 향기.
하늘의 것인 듯 몇 방울의 레몬 즙이
당신의 정신을 잠시 맑게 되돌려 놓았다.
푸르고 맑은 눈빛으로 가냘피 웃는 당신.
내 손에 꼬옥 쥔 당신의 싱그러움이여.
당신의 목 깊숙이에서 바람 소리 일지만
생과 사의 어려운 골목에서
그대는 옛날의 그대가 되어
생애의 사랑을 이 순간에 다 쏟는 것인가.
그리고 잠시
그 옛날 산마루에 올라 쉬던 심호흡 하나 쉬고
당신의 모습은 그대로 멈췄다.
벚꽃 그늘이 있는 사진 앞에
토파즈 빛 향기의 레몬은 오늘도 두자.
(레몬애가(哀歌)/다카무라 고다로/강우식 번역)
* 당신의 하이얀 이가 생큼히 깨물어 토파즈 빛으로 튀는 향기는 과연 어떤 향기일까. 토파즈 빛 향기가 나는 레몬은 또 어디서 살 수 있을까. 내 주머니에 있는 동전 몇 개로는 어림 없겠지. 벚꽃 그늘이 있는 사진을 끌어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눈에선 아마 시큼한 레몬빛 눈물이 흐르겠지.
아침 저녁으로 날이 선선하다. 이런 요즘 저녁에 산책을 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산책을 갔다.
작은 공원.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달을 바라본다. 달이 제법 밝다. 바람도 달다. 그때 우연히 어떤 대화를 듣게 된다. 아빠가 딸 둘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모양이다. 그들이 대화를 나눈다.
"아빠, 나 족구하고 싶어."
"니가 족구의 족자는 아냐?"
"그럼! 발 족(足)."
"그걸 거꾸로 하면?"
또 다른 아이가 대화에 끼어든다.
"족발!"
큭큭. 나는 속으로 웃었다. '발 족'을 거꾸로 하면 '족발'이라니. 그 말이 괜히 웃겼다. 그리고 바람은 무척 시원했다.
어렸을 때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정적인 느낌이 들어 사실 좀 지루했다. 경기시간도 너무 길어 한 경기를 끝까지 본 건 거의 최근의 일이다. 내가 열광한 건 축구였다. 축구는 하는 것도, 보는 것도 다 좋아했다.
야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이승엽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틈나는대로 이 국민타자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1번타자부터 9번타자까지 나름대로 제역할이 있다는 것과 투수는 선발, 중간계투, 구원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보직이 다 정해져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의 중압감이 좋았다. 타자는 한껏 방망이를 예리하게 세우고 투수의 이마에선 연신 땀이 흐르는 그 광경은 무척이나 드라마틱했다.
특히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야구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하고 있다. 매경기 가슴 졸이기는 하지만 정말 야구다운 경기가 펼쳐지는 것 같다. 사실 야구를 보다보면 김빠지는 경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는 또 굉장히 지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결국엔 머리싸움이다. 그리고 멘탈적인 면도 무시 못한다. 경기력에 있어 멘탈적인 면이 이렇게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는 야구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오늘은 세 종류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첫 번째,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
한 마디로 '굶기의 미학'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도 모자라 야식에 간식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먹는 사람들은 당연히 배고픔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다. 최소 두 끼 정도는 굶어봐야 진정한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 눈 앞이 핑핑돌고 머릿속엔 온갖 먹을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초현실적인 경험을 해봐야 비로소 배고픔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경지에 올랐을 때, 우유 한 모금 혹은 비스켓 한 조각을 입에 넣어보라. 그땐 무엇을 먹어도 마찬가지다. 지상에서 가장 달콤한 음식이 자신의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때 혀에 와닿는 감칠맛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불쌍하다.
두 번째, 목마름을 모르는 사람들
아주 더운 날 몸에 있는 수분이 다 빠져나올 정도로 격렬한 운동을 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운동 후에 마시는 첫 모금의 이온음료의 맛이 얼마나 황홀한 지를. 입안은 쩍쩍 마르고 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한 그 순간에 마시는 바로 그 한 캔의 천국. 그때의 그맛과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세포 하나 하나에 수분이 공급되는 듯한 짜릿함. 수분이 전해주는 카타르시스! 그걸 모른다면 정말 불쌍한 사람.
세 번째, 씻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깔끔해서 매일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다. 하지만 그런 깔끔함 때문에 잊고 사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씻는 즐거움이다. 매일 매일 깨끗하게 씻는다면 씻는 즐거움은 별로 느낄 수 없다. 약간의 상쾌함만 남을 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너무 자주 씻기 때문에 씻는 즐거움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며칠 샤워도 하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다가 씻어보면 알게 된다.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그리고 샴푸냄새와 비누냄새가 얼마나 향기로운지를. 그걸 평생 모르고 산다면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아까 낮에 허무한 유머 하나를 생각해 두었다. 그전에 생각해 둔 역시 허무한 유머 두 개와 묶어 허무 시리즈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 허무한 유머는 말 그대로 허무하게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저 허무한 유머를 생각해 두었다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를 테면 내 두뇌라는 나뭇가지에 매미 허물만 남고 매미는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어떤 기억을 잃는다는 것. 그것 참 아니 허무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는 휴대폰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손을 더듬거려 알람소리가 들리는 휴대폰을 집어든다. 오전 9시30분.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다. 그는 알람을 끄고 좀 더 누워있기로 한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눈을 뜬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세면대는 더러웠다. 개수구에 곰팡이도 좀 끼어있다. 그는 세수를 하면서 간단한 욕실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폼 클렌징을 손바닥에 짜낸 후 세수를 한다. 지난 밤 사이 얼굴에 묻은 기름기가 물에 씻겨나간다.
세수를 마친 후 그는 욕실청소를 한다.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스펀지에 욕실세정제를 묻힌다. 그는 욕실세적제가 묻은 스펀지로 세면대를 문지른다. 때가 낀 세면대는 금세 말끔해 진다.
청소를 마친 후 그는 손을 씻고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에서 우유과 시리얼을 꺼낸다. 커다란 접시에 시리얼을 쏟고 그 위에 우유를 붓는다. 그건 오늘 그의 아침이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우적우적 시리얼을 먹는다.
그릇과 스푼은 대충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그는 컴퓨터를 켠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블 클릭하자 메인화면으로 지정된 포털 사이트가 뜬다. 그는 그날의 메인뉴스를 훑어본다. 흥미있다고 생각되는 기사가 있으면 클릭해서 기사 전문을 읽어보기도 한다.
지금 밤 하늘을 올려다 보세요.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머뭇거리다간 이번 여름 밤의 하늘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할지도 모르잖아요. 물론 오늘 밤엔 별은 보이지 않아요. 달도 볼 수가 없죠. 하늘엔 구름이 가득 끼어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구름 너머의 하늘을 느낄 수 있잖아요. 지금 창밖은 바람이 불어 제법 시원하답니다. 쏴아-하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여간 시원한게 아니랍니다. 그리고 풀벌레 소리도 섞여있습니다.
나는 지금 의자에 앉아 발을 창가에 걸쳐 놓고 밤하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오늘 밤엔 무슨 일이 꼭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모 통신사에서 마련한 대형 화면으로는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었다. 화면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연인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특히 어떤 한 커플의 행동이 나를 상념에 젖게 했다.
남자가 여자를 뒤에서 껴안은 상태에서 둘은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저 다정해 보이기만하는 한 쌍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양 손은 여자의 특정한 신체부위를 만지고 있었다. 여자는 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나는 시선을 황급히 돌려야 했다.
'연인사이라면 아무 때나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방의 신체를 만져도 되는 걸까?' 나는 마음속으로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실 연애 초년생일수록 특히 남자일수록 성적인 욕망이나 갈증에 대해 절제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욕망이나 갈증만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이란 이유로 상대의 신체를 마음껏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할수록 타인의 신체를 더욱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좀 오버다. 그리고 그 연인의 행동을 놓고 내가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도 못된다. 그냥 아까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을 끄집어냈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연인이라는 게 신체 포기각서를 서로 주고받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지금과 같은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빠지기 십상이다. 더욱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스타틱 피어의 음악을 듣는다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타이핑 하면서 자꾸만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지금, 시간은 몇시쯤이나 됐을까.
지금,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돌이켜 보면 아득히 먼 별에서 내가 온 것 같다. 손을 쭉 뻗어 그것을 잡으려고 하면 손끝에 자꾸만 검은 어둠이 묻어나는 것 같다. 앞쪽으로, 미래의 방향이 있는 앞쪽으로 팔을 뻗어 검은 어둠이 묻어있는 손을 말려야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에.
어쩌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원하는 것을 찾았지만 그것을 이룰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고 그것을 아예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좋다. 어느 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지금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이런 식의 인간관계는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들기 전 가족들과 말도 잘하고 재밌게 놀다가도 다음날 아침이면 가족들에게 왠지 서먹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는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 번 말을 시작하게 되면 그 전날 그랬던 것처럼 다시 예전의 가족관계로 돌아오곤 했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음악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음악은 언제든 내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내 기분을 맞춰주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