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문학속세상>이라는 페이지를 새로 열었네요.
오늘 아침 거기서 장석남 시인의 '뺨의 도둑'을 읽었는데 느낌이 좋더군요.
한 스푼의 상큼한 체리젤리를 입안에 넣은 것처럼 감칠맛 나더라니까요.
1.
어제 저녁, 갑자기 쵸코파이와 우유가 먹고 싶어졌다. 우유와 쵸코파이는 예전에 유치원에 다닐 때 자주 간식으로 나왔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우유와 안에 마쉬멜로가 들어있는 달콤한 쵸코파이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쵸코파이는 단 한 개였다. 우유도 마찬가지로 각자 한 잔씩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며 먹었던 것 같다. 나는 아마 그때 그 맛에 대한 느낌을 떠올렸던 것 같다.
2.
군대에 있을 때 자판기 커피는 한 잔에 100원이었다. 나는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이 되면 거의 매일 한 잔씩의 자판기 커피를 뽑아마셨다. 아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때 내 짬밥은 아마 일병 이호봉이거나 삼호봉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어김 없이 100원짜리 동전을 자판기에 넣고 커피 한 잔을 뽑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금세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군생활을 통털어 나를 가장 따뜻하게 대해준 이는 아마 그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였을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역 안. 수많은 인파속에 댄디 스타일의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유독 눈에 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그 남자는 애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와 걷고 있는 여자친구 역시 막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온 연예인인 것처럼 예쁜 외모를 갖고 있다. 멋진 이 두 남녀는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한 남자와 부딪힌다.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는 여느때처럼 별볼일 없이 역안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저 앞에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멋진 남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이 별볼남은 조금은 부러운 시선으로 또 조금은 시기심어린 시선으로 점점 가까워오는 남녀를 바라본다.
별볼남이 넋놓고 두 남녀를 바라보는 사이 멋진 남자가 별볼남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순간 별볼남은 열등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별볼남은 상대에게 대들만한 용기는 없다. 별볼남은 그저 멋진 남자를 한 번 째려보는 것으로 자신의 성깔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멋진 남자 역시 별볼남을 무섭게 노려봤기 때문이다. 깨갱깨갱. 별볼남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별볼남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 건 자신을 노려본 멋진 남자보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별볼남이 고개를 숙일 때 벌레를 대하듯 양미간을 찌푸린 여자의 표정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역을 빠져 나온 멋진 두 남녀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둘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여자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켰다. 실내엔 경쾌한 라틴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두 남녀가 각자의 잔에 담긴 커피를 반쯤 비웠을 때 카페 안으로 어떤 남자가 들어섰다. 그 남자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린 후 멋진 두 남녀가 있는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남자는 바로 별볼남이었다. 별볼남은 뭔가를 감싸안은 듯 한 팔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테이블 앞으로 다가온 별볼남에게 멋진 남자가 물었다. 멋진 남자는 정말 별볼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빚 갚으러 왔다. 움직이지 마!"
별볼남은 가슴에 품었던 권총을 멋진 남자에게 들이댔다. 총구는 정확히 남자의 이마를 향하게 했다. 남자의 여자친구가 비명을 지르자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들도 상황파악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다들 조용히 해!"
순간 카페안은 침묵이 흘렀다. 음악도 누군가 꺼버린 모양이었다. 카페 안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뻥끗대는 놈있으면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이마에 권총을 들이댄다면 개처럼 엎드려 신발이라도 핥게 할 수 있다.
"너, 무릎 꿇어! 어서!"
별볼남은 총구를 위아래로 흔들며 멋진 남자에게 명령했다. 멋진 남자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이리 기어와서 혀로 내 신발을 핥아."
별볼남은 더욱 더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 멋진 남자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겁은 났지만 멋진 남자는 잠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 안의 모든 시선이 무릎꿇은 멋진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볼남의 요구대로 혀로 그의 신발을 핥는다면 멋진 남자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 말 안 들려 새꺄!"
별볼남은 즉시 검지손가락을 방아쇠에 갖다대며 위협했다. 멋진 남자는 이제 더이상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못하다간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는 별볼남의 신발을 핥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저거 가짜 총 아닐까?' 혀로 별볼남의 신발을 핥던 멋진 남자의 뇌리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유는 알 순 없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멋진 남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이새끼, 그거 가짜 총이지?"
멋진 남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별볼남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용기는 냈지만 멋진 남자는 속으로 엄청 떨고 있었다. 만약 진짜 총이라면 그대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볼남의 행동은 뭔가 미적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 진짜 총야 임마. 까...까불지 마."
별볼남은 한 발짝 물러서며 말까지 더듬었다. 그제서야 멋진 남자는 총이 가짜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뻥쳐. 그거 가짜 총 맞구만!"
멋진 남자는 재빠른 동작으로 별볼남을 제압했다. K-1 선수처럼 손으로 힘껏 별볼남의 목을 휘어감았다.
"야, 이거 안 놔! 아, 아퍼 아퍼."
멋진 남자는 주먹으로 연신 별볼남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럴 때마다 별볼남은 죽을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 아퍼. 거기 혹혹. 아아, 이새끼가 때린데 또 때리네...아, 아야!"
카페 안은 어느새 별볼남의 비명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별볼남이 멋진 남자에게 두들겨 맞을 때마다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며 응원하기도 했다.
힘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힘은 이동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그리고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블로그라는 것이 몇년 동안을 잘 꾸며왔더라도 한 순간에 '폐쇄 버튼'을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다. 한 묶음의 비밀 일기장을 아무런 미련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에 집어던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에겐 그만큼 모질고 쿨한 면이 있다.
오늘 새벽 출근 길에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했더랬다. 세상의 모든 낙엽들이 밤사이 우리 동네로 쏟아진 것처럼 도로, 인도 할 것 없이 온통 노란 카펫이 깔려있었다. 낙엽이 깊은 곳은 정말 발목까지 빠지는 깊이였다. 고개를 올려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니 앙상하고 마른 가지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 가지들 때문에 더욱 춥게 느껴졌다.
나무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문득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미련 없이 모든 이파리들을 떨궈버린 나무들의 기분이 궁금해졌다. 따뜻한 봄에 살을 간지럼태우며 돋아나던 연록색의 기억과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푸르게 푸르게 짙어져 갔던 파란 이파리들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있을까. 만약 홀가분한 기분이라면 나무는 무척 쿨한 존재다.
그 궁금증은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지 쓸어도 쓸어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어젯밤에는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었다.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잠시 산책을 나서는 중이었다.
내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려 할 때 내 앞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쫄랑쫄랑 걸어오는게 보였다. 강아지는 갑자기 전봇대 앞에서 멈추더니 한쪽 다리를 들고 거기에 영역표시를 했다. 어려서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공중도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강아지에게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얌마, 어디 신성한 길에서 노상방뇨를 하냐! 그것도 형님 앞에서."
나는 강아지가 나의 굵고 힘있는 목소리의 포스에 눌려 꼬리를 내리고 그대로 줄행랑 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짜식, 무섭긴 했을 거다' 그때 내가 해줄 멘트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실제로 강아지는 내가 조금씩 다가오자 몸을 꽤 숙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왈왈 왈왈왈!"
강아지는 나를 향해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짖는 톤 속에는 분명 어떤 감정이 녹아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욕이었다. 나는 은근히 기분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인배인 나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우산을 몇 번 허공에 휙휙 내저었다. 대충 겁을 줘서 내석을 보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강아지는 더욱 더 공격적으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젠 내 다리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그땐 정말 화가 났었다. 가서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시늉을 했다. 보통의 개라면 겁을 먹고 달아났겠지만 이놈은 좀처럼 도망갈 줄을 몰랐다.
그상태로 한 5분은 흐른 것 같다. 강아지는 맹렬히 짖어내고 나는 "안 도망가? 이걸 확!" 이러면서 말이다.
결과는 나의 처참한 패배였다. 뒤에서 사람이 걸어오는 바람에 나는 강아지를 피해 옆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자기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열이 올랐다. 가서 패줄까 생각도 했지만 걍 참기로 했다.
세상에, 강아지랑 싸워서 지다니!
며칠 전 아침 회사에서 일을 하다 문득 집에 전자 모기향-아직까지 모기가 있다;;-을 켜두고 왔는지 아니면 끄고 왔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자 모기향은 몇 시간까지 켜놔도 안전할까요?"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최장 12시간까지 켜놓은 적이 있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내 상황은 만약 모기향이 켜져 있다면 12시간도 훨씬 넘게 켜져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끄고 왔던가. 아냐, 끈 기억은 없는데.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껐을 지도 몰라. 그런가? 걍 꺼져있다고 생각할까? 혹시 켜져있으면? 불까지는 아니더라도 탄 냄새는 나겠지. 갔다 올까. 너무 귀찬잖아. 하지만 점심시간에 잠깐 갔다와도 되잖아.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불안한 것 보단 낫잖아.
그렇게 해서 나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하게 됐다. 문을 열고 모기향의 전원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전원의 빨간불은 켜져 있었다. 나는 아예 코드까지 뽑아버렸다. 그제서야 나는 내 불안의 전원이 스르르 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에는 <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책이 있다. 실비 제르맹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다. 처음엔 그냥 책 제목이 나쁘지 않아서 골랐는데 지금은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하며 읽고 있다. 문장을 한 입, 한 입 씹어먹는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어제 그 책 90 페이지를 읽다가 이상한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우선 페이지 우측 하단에 적힌 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사실 그는 손만 가진 손과의 연애.
그 손은 때때로 그에게서 뚝 떨어져 나온다. 그 손은 그의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오로지 그의 삶을, 활력을, 열정만을 증명한다.
처음에 나는 책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누군가 그대로 옮겨적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책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창작해 낸 글인 것이다. 글의 내용도 그렇고 글씨체를 봐서도 어떤 여자의 솜씨가 느껴졌다.
그 여자는 책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 혹시 이 낙서를 직접 쓴 사람이거나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 우체국 사서함 78-5로 엽서를 보내셔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 사실 이런 낙서를 만나는 건 즐거운 일.
다섯에서 여섯 개의 돼지 피부가 붙은 살점만 걷어낸다면 순대국은 그런대로 먹을만한 음식이다. 잘만 먹으면 굉장한 보양식, 영양식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순대국에서 최소 다섯에서 여섯 개 정도의 살점을 빈그릇에 걷어내는 이유는 살점에 붙은 돼지털을 끔직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이 가는 살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그것을 형광등 불빛에 비춰 신중히 바라본다. 미세한 털의 윤곽이 내 망막에 비치는 순간 그것은 가차없이 빈그릇으로 옮겨진다.
털없는 돼지를 발명한다거나 돼지에게 박피수술을 한다면 순대국 먹기가 좀 더 수월해지겠지만 현재로썬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어쨌든 내게 순대국은 약간의 수고로움과 약간의 뜨거움을 감내하며 먹는 음식이다.
순대국을 처음 먹어본 것은 군대에서 첫휴가를 나왔을 때다. 그때 부대에 나름대로의 전통-아마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일 듯-이 있었는데 휴가 출발하는 날 휴가자 중 가장 고참이 후임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것이 그것이었다.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휴가 출발하는 날은 순대국에 소주 또 휴가 복귀하는 날은 삼겹살에 소주였다.
입술물집이 생겨버렸다. 좀 어려운 말로 이것을 구순포진이라고 한다. 구순포진은 입술에 작은 물집이 방물방울 생기는 병을 말한다.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할 때 생기기 쉽다. 특히 요즘처럼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환절기에 걸리기 쉽다.
구순포진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고 한다. 바로 내 경우가 그렇다. 유전적으로 구순포진에 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이다.
사실 원래부터 우리 집안의 유전자가 구순포진에 약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한 조상님 탓에 우리 집안의 유전자는 구순포진에 약해지고 말았다. 나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그때의 이야기를 대충들어 알고 있다. 그일은 몇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날도 우리 조상님은 저녁을 먹고 동네 어귀에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행차하셨다고 합니다. 옆동네에 사는 아름다운 그의 여친을 기다리기 위해서였죠. 이윽고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조상님의 여친이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왔죠. 조상님은 그녀가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헌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조상님의 여친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도 안 마주치고 자꾸만 조상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이었어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조상님은 물었죠.
"아니, 낭자 오늘은 왜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거요? 내 얼굴이 보기 싫소?"
"어머,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밤낮으로 보고 싶은 그 얼굴이 보기 싫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인 걸요."
하지만 조상님의 여친은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대꾸할 뿐이었죠. 조상님은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면 대체 왜 자꾸 고개를 숙이고 나를 피하는 것이요?"
"실은..."
"실은...무어란 말입니까? 사랑하는 낭자, 어서 말해 보세요."
"실은 입술물집이 나버렸지 뭡니까. 의원이 그러는데 다른 이에게 옮길지도 모른데요. 그러니 오늘은 키스하면 아니되옵니다. 가까이 다가와도 아니되옵니다."
"허허허,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그러시오. 어서 이리 오시오."
조상님은 예의 호탕한 그 웃음을 지으며 여친을 힘껏 끌어안았죠.
"어머, 이러시면 아니되어요! 병이 옮을지도...웁..."
여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상님은 찐하게 키스를 해버린 거예요.
그날 이후 우리 조상님과 그의 여친은 사이 좋게 입술물집을 나눠갖게 된 거래요. 그것도 서로 반대편에요. 우리 조상님은 오른쪽에 조상님의 여친은 왼쪽에 훈장같은 입술물집을 한동안 함께 달고 있었던 거죠.
그 후로요? 맞아요. 그후로 우리 집안은 입술물집, 즉 구순포진에 약한 유전자를 갖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