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6일 월요일

설국

 눈을 떴을 때, 내가 탄 버스는 눈의 나라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사방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도, 도로 위에도 온통 하얀 눈 뿐이었다.

 나는 신기한 듯 대여섯 살의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하고 창밖만 내다봤다. 그런 내게 눈의 요정들은 환한 웃음을 선사했다. 나는 햇빛을 받아 부서지는 요정들의 웃음소리를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버스는 아까부터 계속 눈밭에서 길을 잃은 사슴처럼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만 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아마 그곳은 눈의 나라 여왕님이 살고 있는 곳이리라. 그곳 어딘가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순수의 문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순백색의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힐 텐데.

 

 밤이 되어 도착한 내 오랜 집은 이글루처럼 변해 있었다. 이글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누이트 부부 같은 엄마와 아빠가 나를 맞았다. 그렇게 나는 장장 여섯시간 반의 눈의 나라 여행을 마치고 이글루 가족이 되었다.

 

 

 

2009년 1월 22일 목요일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처음엔 민중가요인 줄 알았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을 아느냐고 물어왔을 때 저는 정말 꽃다지나 조국과 청춘의 노래를 떠올렸죠. 하지만 동화였습니다. 꽤 유명한 동화라고 하더군요. 동화에 취약한 저로써는 처음 듣는 책이름이었어요.

 트리나 포올러스. 당연히 제가 모르는 작가가 쓴 동화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뚝딱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는데 훌륭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어쩌면 아이들은 잘 이해할 수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직장생활을 몇 년 해본 어른들이 읽기 좋은 동화란 생각이 들어지요. 말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 느낌을 받은 셈이죠.

 특히 문체가 맘에 들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료한 문체. 이 책을 쓴 작가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세상은 분명 꽃과 나비로 가득한 천국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누구나 맘만 먹는다면 나비가 될 수 있지요. 

 재개발 때문에 다툴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는 그런 천국을 꿈꾸며 리뷰를 마칩니다. 희생된 이들 모두가 봄에 나비로 태어나기를...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기분을 위한 레시피

 딱딱하게 굳은 기분이 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 딱딱하게 굳은 기분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까. 아하. 갑자기 머릿속의 알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나는 우선 빨래집게를 이용해 기분을 빨래줄에 건다. 그런 다음 몽둥이로 기분을 살살 두드린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기분에서 우두둑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래 기분은 말랑말랑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쉽게 부러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약간의 유연함. 그렇다. 지금 이 작업은 굳어진 기분에 약간의 유연함을 주기 위한 작업이다.

 조금 부드러워진 기분은 저녁 햇살이 비치는 곳에 놓아 둔다. 그리고 오디오에서 음악을 꺼내 채를 썬 다음 살살살살 기분 위에 뿌린다. 그러면 가루처럼 흩어지는 음악은 기분위에서 녹는다. 좋다. 기분은 훨씬 부드러워 졌다.

 기분의 입맛은 아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기분에게 우유와 쵸콜릿을 주자 기분은 한층 부드러워 졌다. 바로 이때 기분을 주물러 줘야 한다. 중국집의 베테랑 주방장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듯 기분을 마사지해준다. 다 됐다. 어느새 기분은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러워 졌다.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독서

 

 韓國名短編選(한국명단편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중학교에 올라간 기념으로 서점에서 산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게 확실치는 않다. 내가 샀는지 아니면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가 선물한 것인지.

 

 독서, 그러니까 책읽기는 어렸을 때 내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문화였다. 집에 책이라고는 전화번호부와 족보가 전부였다. 또 책을 오 분 이상 들여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아무래도 난 티브이를 보거나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좋았다.

 

  그 단편집을 거의 일 년에 걸쳐 읽은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그나마 오 분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펴면서 읽은 게 그정도다. 당연히 책에서 어떤 감동 같은 걸 느끼는 건 무리였다. 대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옛날 소설만 읽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그 단편집에 나온 소설들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과서를 봐도 시인이란 윤동주, 이육사 이런 사람들의 시만 실려 있으니 현재에 시를 쓰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때 내 문화 수준은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무지했던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다른 문화에 대해 좀 더 깨어있었던들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스물 두 살때부터였다. 스물 두 살, 그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고 예정대로 군대에 입대했다. 그 일년동안의 자양분이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 많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톨스토이의 <예술론>, 김승옥 소설 전집,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이 그때즘 읽었던 책들이다. 사실 책보다 더 사랑한 건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느라 새벽 세 네시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지금 내가 가장 취약한 건 동화다. 나는 제대로 읽어본 동화책이 별로 없다. <피터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작년에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열 살 전후의 나이에 내가 동화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상상력이 좀 더 풍부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꽃남>이 일깨워 준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다.

 

 얼마 전 <그들이 사는 세상>이 끝나던 날, 다음 드라마 예고편이 화면에 소개됐다. <꽃...>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목의 드라마였는데 예고편을 단 몇 초만 보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뭐, 저딴 걸 하냐' 그렇게 나는 절대 저 드라마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진짜 유치하고 볼만한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다 보니 나름 재밌는 부분도 있었다. 구혜선도 꽤 귀여운 캐릭터로 나왔다. 알고 보니 원작이 만화였던 것이다.

 

 <꽃보다 남자>의 최대 단점은 유치함이다. 그러니까 '유치한 것'='나쁜 것'이란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볼만한 드라마다. 주성치 영화에서 유치함은 오히려 매력이듯이 말이다. 나는 오히려 이 점이 신선했다. 드라마를 <톰과 제리>처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꽃남>이 더욱 더 만화적인 느낌으로 치장하길 바란다.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장치, 효과음을 더 팍팍 써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정말 미래는 알 수 없다. 내가 <꽃남>을 보게 되다니...

 

 

 

 

 

적과 진실

 

  적을 너무 많이 만들면 언젠간 그 적들에 의해 곤경에 빠지게 된다. 미네르바가 그렇다. 미네르바는 그동안 아군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만큼 적들 또한 많이 만들었다. 적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바람으로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할 수 없다. 아무리 세차게 불어재껴도 말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할 수 있는 건 온화한 태양이다.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고 연못으로 풍덩 뛰어들 게 할 수 있는 태양.

 

 진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허위사실 유포가 인정됐으니 진실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플라톤은 이 세상은 가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진실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했다. 정부와 검찰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왔니?

 

 

 

2009년 1월 8일 목요일

로마신화에 나오는 어느 여신의 체포

 검찰이 미네르바를 체포한 건 그가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 봐라. 너희들이 추종하는 미네르바라는 환상의 실체를. 그의 학력과 직업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란 말이다. 어때, 학력은 형편 없고 직업도 변변치 않구나. 너희들은 속은 거야. 쟤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지.

 아마 검찰은 이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모니터 위에 옮긴 글들이 모두 거짓이었을까? 내가 알기로 미네르바는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유명인사가 된 걸로 알고 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와 비견되는 예언가가 아니었던가.

 그의 글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신동아에 기고한 글은 한 번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나는 겨우 경제관련 학부를 졸업했을 뿐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상당한 경제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네르바가 알려진대로 50대의 전직 금융인 출신이었다면 검찰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대단한 경력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더 그를 믿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여신처럼 디지털 세계를 유영하는 미네르바라는 존재가 무척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학벌이 좋지도, 경력이 화려하지도 못했다. 검찰이 판단하기에 여신의 조건에 부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체포된 것이다.

 

 검찰은 줄곧 미네르바라는 경제 아이콘의 처형을 원했고 결국 그를 단두대 앞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검찰에게는 축하할 일이다. 당신들 각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나같은 사람은 그런 총애가 역겹다.

 

 

 

2009년 1월 4일 일요일

유명인의 서재

 


<공지영 작가의 서재>

 

탁자와 의자가 고풍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한 쪽 벽 전체가 창인 것 같은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좋은 것 같다.



 


<김용만 씨의 서재>

 

깔끔하게 잘 꾸며놓은 것 같다.


 


<박경철(시골의사) 씨의 서재>

 

서점의 한 쪽 구석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이런 식으로 쌓아놓는 분들이 독서를 진짜 많이 하는 분들이다. 얼핏 봐도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쌓여있는 것 같다.



 


<신경숙 작가의 서재>

 

넓은 책상 그리고 노트북까지. 전체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서재다. 저런 데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 맛이 더욱 좋을 듯. 작가님, 집필중이시군요.



 


<정이현 작가의 서재>


 

서재라기 보다는 책장 하나 정도. 실제로 정이현 작가는 책 모으는 것에 취미가 없다고 한다. 책은 보통 한 번 읽거나 많이 읽으면 세 번 읽게 되는데 특별히 모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 다 읽은 책은 남에게 준다고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책들을 평생 한 번 씩만 읽지 않는가.

 

 

2009년 1월 3일 토요일

큐피트의 화살

 만약 당신이 좀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당신의 동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가진 동선의 특징 때문에 어쩌면 당신은 사랑을 놓쳐버린 게 한 두 번이 아닐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다시피 큐피트는 명사수가 아니다. 큐피트는 윌리엄 텔처럼 활시위를 힘껏 당겨 눈으로 뚫어지게 목표물을 응시한 다음 비로소 활시위를 놓는 것은 아니다. 큐피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활시위를 당긴 다음 대충 목표다 싶은 곳을 향해 활을 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동선이 조금만 어긋나도 큐피트의 화살은 당신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돌이켜 보라. 당신에게 화살이 스친 적이 있는 지를. 어쩌면 당신은 여러 번이나 큐피트의 화살을 무의식적으로 피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큐피트는 게으르기 때문에 잘 못 쏜 화살을 다시 정조준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떠나버린다. 그가 다시 언제 나타날 지 기약도 없다.

 

  당신은 좀 더 상대방 가까이에서 동선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길게 대화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큐피트는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활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즐겁게 오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이 대화에 푹 빠져 있는 동안 큐피트는 살며시 다가와 당신의 가슴 한 켠에 한방 그리고 상대방의 가슴 한 켠에 한방, 금촉 화살을 날려줄 것이다.

 

* 단,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큐피트는 장난꾸러기이기 때문에 금빛(사랑)이 아닌 납빛(증오)의 화살촉을 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