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8일 토요일

쇼생크 꽃게

1.

 

 언젠가 엄마가 시장에서 꽃게를 잔득 사온 일이 기억난다. 엄마는 우선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꽃게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옮겼다. 그리고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꽃게들이 너무 싱싱하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쌩쌩하게 살아있었다. 그것들은 사방에 감시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탈출을 시도했다. 나는 바가지에 경계선을 정해놓고 선을 넘는 녀석들에겐 따끔한 꿀밤을 선사했다. 제아무리 딱딱한 외피를 입고 있는 꽃게들이지만 내 꿀밤엔 겁을 먹은 눈치였다.

 

2.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갔다가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가지를 뛰쳐나와 탈출을 시도했던 꽃게 한 마리가 문지방 바로 앞에서 굳어있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 꽃게는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탈출을 감행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슬펐지만 사실 좀 웃겼다.(생각해 보라 문지방 앞에 꽃게 한 마리가 저렇게 폼잡고 있는데.ㅋ)

 

 아무튼 간밤에 있었던 녀석의 탈출은 꽤 고된 것이었다. 바가지를 넘고, 식탁에서 뛰어내려야 했고, 부엌을 가로질러 문앞에까지 왔던,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던, 참으로 허무했던 탈출이었을 거다.  

 

3.

 

 그 꽃게의 추모곡으로 겸사겸사해서 프로디지의 'Breathe'를 바친다.

 

4.

 

 

 보너스. 꽃게 얘기가 나왔으니 짤방사진으로 꽃게는 아니지만 훈훈한 '꽃개'사진을 대신할까 합니다.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음성사서함

1.

 

너와 헤어진 지 벌써 8시간이 되어 가.

어제 너와 그 남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오늘 널 울리고는 많은 것을 느꼈어. 너에 대한 이런 내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거라 생각해.(나만의 착각일 진 모르겠지만)

어제 다른 남자와 있는 너를 본 후 3시간 동안은 내 감정을 도저히 추스릴 수가 없었어. 밤잠까지 설친 것은 물론이야.

너의 공휴일 저녁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 그 사람은 네게 어떤 의미일까?

또 그 사람에게 너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질문들은 새벽이 되어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내가 너에 대한 감정을 더욱 키워가기 전에 내가 너에게있어 어떤 존재인지 귀뜸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넌 또 침묵하겠지.

그래서 난 사랑함으로 바보가 되고 넌 침묵함으로 바보가 되겠지.

우리 둘 다 그렇게 말이야.

 

너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을 아니까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어.

내가 차가운 이성으로 내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가능할 때 내 곁에서 빗겨 서있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

그래서 나에 대한 너의 감정을 너도 명백히 할 수 있게 말이야.

그래, 이제 내가 너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을 그만둘까 해.(자신은 없지만)

하지만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다면 언제라도 연락해 주길 바래.

그럼 그곳으로 갈 게.

또 네가 원하는 걸 있는 사실대로 말해줘. 그럼 그렇게 할게. 정말이야.

 

그런데, 지금 나 말이야 한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

그 사람의 체온과 목소리가 너무나 그리워.

하지만 난 지금 그럴 수 없어. 내가 네게 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만큼 네게 귀찮은 존재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거든.

오늘밤 너는 신을 닮은 것 같아.

나한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잖아.

너무 차갑다. 이 침묵은...

 

-  11년전 한 여인의 삐삐 음성사서함에 어떤 남자가 남긴 사연

 

 

 

2.

 

 

- 역시 십 여년 전 한 남자의 전화기에 어느 여성이 남긴 음성 메세지

 

 

 

 

* 소통이 없는, 소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메세지를 남기는 음성사서함은 무척 쓸쓸한 것 같다. 우주적인 공허함이랄까. 거대한 우주의 구석에 외롭게 박혀 있는 작고 차가운 별 하나가 느낄 법한 뭐, 그런 거.^^;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밤의 클라라-카트린 로캉드로

 

 클라라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한다. 밤엔 창녀로 일하고, 낮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등 밤과 낮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밤의 클라라와 낮의 클라라 이렇게 따로 부른다. 하지만 어느 날 이 경계는 무너지고 만다. 어떤 남자를 만나면서 말이다. 남자는 처음에 밤의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고객으로 말이다.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이 남자는 클라라에게 편지를 읽어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나는 당신을 원해요. 나는 그 누구도 원한 적이 없어요.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말아요...'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클라라는 편지를 읽어주면서도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엔 남자가 그런 부탁을 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클라라에게 남자의 첫인상은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다. 남자가 클라라에게 원한 건 그 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주는 것.

 그때부터 밤의 클라라와 낮의 클라라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밤의 클라라는 낮의 클라라에 영향을 미치고, 낮의 클라라는 밤의 클라라에 간섭하게 된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낮과 밤의 경계 그리고 떠남. 이 소설의 테마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 소설이 좋다. 읽기 좋은 소설이 좋은 소설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다음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문체. 이미 나는 첫 문장부터 카트린 로캉드로의 문체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생각

 어제는 밤 늦게까지 헤드폰을 쓰고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들었다. 물론 방안의 조명도 최대한 낮게 했다. 그때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혹은 불온전한)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능동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생각들이 나를 찾아왔다는 표현이 옳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편두통처럼 생각들은 불쑥 나를 찾아왔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려 애썼던 것 같다. 아니, 저절로 곤충들처럼 시간을 더듬거렸던 것 같다. 십 여년 전의 일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왠지 나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 펼쳐진 그 기억의 타임라인에는 내가 잃어버린  감각, 희망, 열정 이런 뜨거운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이별에 대처하는 락음악의 장르별 자세

 

* 저 중에서 내 성향은 아마도 브릿팝과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지 않나 싶다.(나만의 착각인가?^^;) 아무튼 요는 사람마다 사고하는 방식과 행동패턴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장르의 음악이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데스 메탈이나 브루탈 메탈은 표현방식이 과격하긴 한데 그런 형식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부류의 음악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경우가 더욱 많다. 그러니까 저런 잔혹한 표현양식은 감정의 해소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어떤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다.  

 

* 출처 : 모릅네다.

 

 

2009년 2월 10일 화요일

시단소녀

 

 

 베이징 시단시장에 가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시단소녀가 있다. 그녀는 지금 중국 네티즌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사람중 하나다.

 그녀의 이름은 지앙한닝(蒋寒凝). 1990년 1월 중국 사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향인 그곳에서 음악을 배우고 기타를 익혔다. 2008년 무작정 베이징으로 상경한 그녀는 술집이나 지하철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허름한 점퍼, 두꺼워 보이는 츄리닝 바지, 장비라고는 기타 한 대와 작은 엠프 하나. 그녀의 공연은 언뜻 보기엔 그저 초라해만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공기중에 발산하는 음악은 걷는 이의 발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할 만큼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 그녀의 노래를 감상해 보자.

 

 

난 특히 이 곡이 더 맘에 든다. 이 곡은 그녀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곡이기도 하다.

 

 

 이 곡도 좋다. 물론 그녀의 창작곡은 아니다. 원곡은 따로 있다.

 

 

 첫번째 노래인 天使的翅膀(천사적시방:천사의 날개, 安琥-안호)의 원곡이다.

 

 

 두번째 노래 不让我的眼泪陪我过夜(불양아적안루배아과야, 齐秦)의 원곡.

 

 

2009년 2월 8일 일요일

푸른 바다의 전설

 노량진수산시장.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면 어느 바닷가 한 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다.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이곳은 그냥 수산시장이 된다. 사방에는 바다 생물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상인들은 쉴새 없이 소매자락을 붙든다. 한 마리 만원, 두 마리 사 만원, 오 만원, 어떤 것은 칠 만원... 뱃고동 소리처럼 귓전이 웅웅거린다.

 

 우리들은 그저 아무 가게 앞에 멈춰서서 아저씨가 커다란 고무대야에 던져놓은 우럭, 광어, 방어를 각각 한 마리 씩 골랐다. 방어? 나는 처음 보고 또 처음 들어 본 생선이다. 흥정이 거의 성사된다 싶으니까 아저씨는 느닷없이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막대로 생선에게 차례 차례로 치명타를 가했다. 어떤 놈은 즉사했고, 어떤 놈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반쯤 숨이 끊어진 생선들은 곧바로 가게 뒷쪽에 있는 도마위로 올려졌다.

 

 도마는 커다란 통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었다. 하도 오래 써서 그런지 칼날에 많이 찍힌 앞쪽은 움푹 패여져 있었고 도마 전체가 생선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또 도마 끝에는 무시 무시한 식칼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아저씨는 칼을 뽑아들더니 생선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손놀림에 따라 물고기의 살점이 뚝뚝 나가떨어졌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물고기들은 그렇게 수산시장의 후미진 곳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몸둥아리가 잘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우리들이 정말 저래도 되는 지 궁금해 졌다. 잔혹한 피의 댓가를 언젠가는 치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도 살짝 밀려들어왔다.  저들도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푸른 바다를 헤엄쳤을 텐데 말이다.

 

 푸른 바다에 살던 물고기들은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려 육지에서 산 다음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2009년 2월 4일 수요일

심장에 남는 사람

 

 

 이 영상속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이름은 정설향이라고 한다. 그녀가 상해에 있는 '모란봉'이란 식당에서 '접대원 동지'로 일할 때 이 노랠 불렀다.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접대원 동지'들은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중국에 들어왔으며, 주로 당 간부, 대학교수, 기자, 고문배우들의 자녀라고 한다. 정설향의 부모도 평양 예술단의 가수와 배우라고 한다. 아마 그런 내력으로 그녀는 저렇듯 청아하고 호소록 짙은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지금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녀가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는 동명의 북한 예술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집안, 학벌 좋은 엘리트 애인을 마다하고, 부인을 잃고 두 자녀를 키우며 공장에 헌신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한 여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바이브란 그룹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를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다. 내가 검색해서 알아낸 건.

 

 

 * 작년 말쯤에 포딕스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영상인데 생각보다 쉽게 그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2009년 2월 2일 월요일

2009년 2월 1일 일요일

대사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죽은 듯이 살아.

 

 얼마전 <영화는 영화다>를 본 후 문득 문득 이 대사가 생각난다. 강패(소지섭)가 바다 한 가운데서 상대편 두목을 물에 빠트리기 직전에 했던 말이다. 그때 강패는 입에는 담배를 물고 먼 바다를 바라보며 낮은 음성으로 얘기한다.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죽은 듯이 살아. 마치 영화의 한 대목처럼 말이다.

 물론 그때 강패가 한 말은 그가 출연하고 있던 영화의 대본에 있는 대사다. 그는 현실에서 영화대사를 읊조린 것이다. 강패는 그 한 마디 때문에 나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그걸 뒤섞는 다면? 마찬가지로 현실과 상상은 다르다. 그걸 뒤섞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