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2.3 센티미터의 눈

 2.3센티미터. 오늘 서울에 쌓인 눈의 높이였습니다.

 사실 오늘 하늘에서는 기상청의 예보대로 1센티미터의 눈을 뿌릴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견습 천사들 때문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버리게 된 것입니다.

 

 20마리의 견습 천사들이 눈을 만들기 시작한 건 오늘 오후부터였습니다. 모두 새 천사옷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눈보다도 더욱 하얀 모습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마침 견습 3주차 첫째날로 모두 눈 만드는 작업에 투입된 것입니다.

 오늘의 미션은 땅에 1센티미터의 눈을 뿌리는 것. 천사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인기있는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견습 천사들은 아침부터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자 견습 천사들 앞으로 구름으로 만든 얼음과 분쇄기가 도착했습니다. 견습 천사들은 빨간 모자를 쓴 조교 천사로부터 분쇄기 조작법부터 얼음을 고르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눈 만드는 작업이 처음인 견습 천사들은 서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분쇄기 스위치를 너무 높게 맞춰놔 눈의 결정이 너무 작았습니다. 원래 하늘에서는 오늘 함박눈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천사들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양조절이었습니다. 견습 천사들은 구름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의 얼음을 뽑아냈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얼음을 뽑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늘에서는 2.3센티미터의 눈을 뿌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견습 천사들은 나름대로 멋진 눈을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들을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야구, 미안해



* 오유에서 본 글인데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네요.  아마'야구, 미안해'라는 말 속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어서 그런 거겠죠.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장미가 없는 꽃집

 

 어느 비가 내리는 날 아침.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에이지(카토리 신고)는 우연히 자신의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미오(다케우치 유코)를 발견한다. 에이지는 미오에게 우산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미오는 에이지를 경계하며 거절한다. 하지만 마음이 착한 에이지는 비를 맞는 미오가 염려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코트라도 잠시 말리고 가라고 권유한다. 사실 이때 둘 사이엔 작은 오해가 있었다. 에이지는 미오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고, 미오는 에이지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곳이 집이 아닌 가게 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에이지가 그냥 안이라고만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낯선 남자의 집안에 들어간다는 건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 안이라면 상황은 다르다. 그것도 꽃집이라면.)

 

 에이지는 미오가 흰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의 가게 안을 응시하던 미오의 아름다운 얼굴. 에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서 슬픔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낀다. 게다가 그녀는 마침 에이지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

 

 여기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이 드라마는 일반적인 멜로 드라마의 출발점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이 숨어 있다. 미오가 에이지의 가게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오는 의도적으로 에이지를 파괴시킬 계획을 갖고 그에게 접근한 것이다. 미오의 등장으로 인해 에이지가 가꿔온 평화롭던 생활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자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딸이 있다. 딸은 아직 완벽한 어른이라 할 수 없는 스무 살. 그 스무 살의 딸이 또래의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그의 아이를 가졌다. 그런데 그 남자는 딸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딸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딸은 몸이 약해 출산을 하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보 같이 아이를  지우지 않고 끝까지 그 남자를 기다린다. 그러다 결국 딸은 아이를 낳다가 병원에서 죽는다.

 상황이 이렇다면 누구라도 딸을 임신시킨 남자를 증오할 것이다. 에이지는 바로 이런 이유로 증오를 받는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의 이름은 루리다. 에이지는 종합병원 원장인 루리의 아버지로부터 딸을 임신시키고 버렸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사실 에이지는 루리의 죽음을 가장 옆에서 지켜보았고 슬퍼했다. 그리고 루리가 남기고 간 아이를 홀로 키워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시즈쿠.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그동안 에이지는 착실히 돈을 모아 원하던 꽃집을 샀고 겨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 루리 아버지의 잔혹한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루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병원 간호사인 미오를 시켜 에이지를 유혹하도록 했다. 그 대가는 미오 아버지의 뇌종양 수술을 그 분야 최고 권위자인 자신이 집도 하는 것. 일종의 거래인 셈이다. 증오의 목표는 에이지의 전재산과 딸 시즈쿠를 빼앗아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미오는 갈등한다. 원장에게 들은 바로 에이지는 파렴치한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파렴치한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선량하다. 더구나 유혹을 연기하다 점점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드라마는 중반까지 에이지와 미오의 관계 발전, 에이지의 선량함에 동정심을 갖게 만드는 사건들, 미오의 갈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반전이 드러나면 에이지라는 인물이 더욱 더 매력적으로 부각된다.

 

 

 

 가장 좋은 반전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을 뒤집는 것이다. 즉,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사실이 아니거나 그와 반대로 판명날 때다. 이 드라마의 최대 장점은 백점 만점에 백점짜리 반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용은 극의 흥미에 거의 방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스포일러 축에도 끼지 못한다. 부디 반전의 묘미를 느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가슴 따뜻한 감정도.

 

 

 

 

*장미가 없는 꽃집》(薔薇のない花屋)은 2008년 1월 14일부터 3월 24일까지 일본 후지TV 계열에서 매주 월요일 21시(JST)에 방영했던 텔레비전 드라마.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이웃집의 나무

 며칠 전 나는 창밖에서 사람들이 부스럭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들이 탄광에서 부지런히 석탄을 캐고 있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물론 잠결에 들은 것이라 내가 연상한 것이 정확한 건 아니다. 더구나 창밖에 석탄굴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무튼 창밖에선 몇몇의 인부들이 어떤 작업을 벌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옆집의 지붕을 수리한다거나, 건물 외벽에 페인트 칠을 한다거나... 아마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만 열어 밖을 내다 보았다. 작은 창틈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주 잠깐 동안의 눈부심이 사라지자 나는 창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다.

 

 내 방 창문을 열면 가장 먼저 옆집의 커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뭇잎에 빗방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장 먼저 들리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제일 먼저 들린다. 한 여름에는 나무에 사는 매미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방해 받았던 적도 많았다. 겨울에 눈이 오면 나뭇가지 마다 눈이 쌓이곤 했다. 아주 많은 가지와 아주 많은 이파리를 가진 나무였기 때문이다.

 

 

 나무는 바로 전날까지 내가 보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섬세하게 뻗어 있던 잔가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거기에 붙어 늦은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기던 수많은 나뭇잎들은 이미 어딘가로 유배돼 버린 뒤였다. 휑뎅그레하게 몸통만 남은 나무는 내게 조금은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마 너무 갑작스런 변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창을 열면 나무는 며칠 전 변해버린 그모습 그대로 서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시 가지가 생기고 잎이 날 것이다. 내년 혹은 내후년 여름쯤이면 나무에 다시 파란 이파리들이 자라나기 시작하지 않을까. 물론 그땐 나는 이미 이사가고 없겠지만.

 

 

 

<이젠 과거가 된 나무의 모습들>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스쿠터가 달린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주인을 알 수 없는 스쿠터 한 대가 공터 구석에 세워졌다. 그날 이후로 스쿠터는 공터의 일부가 되었다. 스쿠터는 공터의 벤치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았고, 바람이 불면 어딘가 앓는 소리를 냈다. 가끔은 불량끼 있는 동네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낡을대로 낡아 있던 스쿠터는 당장 폐차시켜도 될 만큼 엉망이 되고 말았다. 헤드라이트는 부서져 밖으로 튀어나왔고, 안장은 예리한 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타이어는 펑크가나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흉물 그자체였다. 그 누구도 저 스쿠터가 다시 부릉부릉하는 엔진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를 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쿠터는 이제 스쿠터로 추정되는 고물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잔득 녹이 슨 스쿠터의 배기통 안으로 씨앗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아마 공터 너머에 있는 꽃집에서 날아든 씨앗이었을 것이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이곳 공터에까지 날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다 낡아버린 스쿠터의 배기통 속으로. 씨앗에게는 불운이라면 불운 일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스쿠터의 배기통 속으로 들어간지 며칠이 지난 후 스쿠터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도 스쿠터에 손을 댄 적이 없는데도 스쿠터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서졌던 헤드라이트는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고, 안장과 배기통도 망가지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냥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스쿠터의 전체적인 모습은 새것처럼 변해있었다.

 

 지금 스쿠터가 있던 공터는 텅 비어있다. 스쿠터는 그날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것의 몸으로 변신한 스쿠터는 서서히 엔진 소리를 내더니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릉부릉. 스쿠터는 좀 더 엔진 소리를 높였다. 스쿠터의 경쾌한 엔진음이 공기를 갈랐다. 스쿠터는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공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터를 벗어난 스쿠터는 탁 트인 도로로 질주했다. 스쿠터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다.

 

 그날 이후 텅 빈 공터를 바라보면 스쿠터가 달린다.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축구 게임 골 모음

 
pes 2009 골 모음. 유일하게 즐기는 게임. 운영팀은 세리A 피오렌티나.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전쟁

밤은 여름을 몰아내려고 하고, 낮은 여름을 끝끝내 놓지 않으려 한다

2009년 전국을 강타한 서스펜스 어드벤처 스펙타클 미러클 스릴러 액션!

거리에선 낙엽 융단 폭탄이 흩날리고, 코스모스 지뢰가 찬란히 터지는 날

마침내 끝나버릴 전쟁

 

(한 마디로 밤엔 춥고, 낮에 덥다는 얘기^^)

 

 

 

 

 

2009년 10월 3일 토요일

 혼자서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은 어쩌면 무척 따분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일에 단련돼 있는 편이다. 스무 살 이후로 집을 떠나 줄곧 타지에서 살았으니 오늘처럼 혼자 버스를 타고 집을 향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오늘은 린킨파크의 라이브 앨범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비록 고급 테이크 아웃 커피가 아닌 일반 캔커피였지만 달콤하게 입안을 적셔주기엔 충분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얘기가 아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달에 관한 얘기가 하고 싶다. 차창에 붙어서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혹은 내 눈이 계속해서 좇아다녔던 그 달에 대해.

 

 달은 오늘과 내일 굉장히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든 빌지 않든 간에, 날이 날인 만큼 둥글게 떠있는 달을 향해 눈길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달은 방송 스케줄로 인해 눈코 뜰새없이 바쁜 하루 였을 것이다.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 시간에 출연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꽤 많은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오늘 달이 얼마나 바빴었는 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Lunatic'이라는 단어가 있다. Lunatic의 어원은 달을 뜻하는 'Luna'에서 파생되었다. 옛날 서양사람들은 달이 사람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달의 영기를 직접받은 사람은 미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Lunatic'이라는 단어는 달의 영향을 받아 '어리석기 짝이없는', '미치광이 같은'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옛날 영국의 법정에서는 Lunatic이라고 판명받은 사람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형량이 감면되었다고 한다. 달에 의한 정신이상을 상당부분 인정했던 것이다. Lunatic에 관한 이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의 1권 끝부분에서도 잠시 언급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나를 따라다닌, 혹은 내가 좇아다닌 달은 굉장히 'lunatic'하게 느껴졌다.

 

 

2009년 9월 8일 화요일

위대한 아버지

 우리는 강주변에 텐트를 쳐놓고 야영을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텐트 안에 들어갔을 때는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잘 왔다. 낮에 차를 타고 오래 이동했고 오랜만에 몸을 많이 움직여서 피곤했던 모양이다. 옆에서 흐르는 강물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쉽게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밖에서 우리가 잠든 텐트를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강물이 텐트 바로 앞까지 불어나 있었다. 사방이 강물로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당장 관계당국에 신고를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대가 도착할 것이리라.

 

 "안 되겠어. 이대로 기다리다간 큰 일나겠어."

 

 "그럼, 어떡하지?"

 

"각자 애들을 깨우고 헤엄쳐 가야겠어."

 

 "뭍까지 헤엄치기엔 너무 먼데."

 

 "아이스 박스든 뭐든 물에 뜨는 걸 찾아보자구."

 

 우리는 각자의 텐트로 돌아가서 아직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열 두 살 내 아들도 영문도 모른 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텐트 안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그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모두 끄집어 냈다. 반쯤 얼음으로 채워진 아이스박스 안에는 맥주와 소주 콜라 등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불어난 강물은 어느새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물이 불어나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나는 서둘러 아이를 아이스박스 위에 태웠다. 아마 삼 십 미터쯤만 헤엄치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손으로는 아이스박스를 밀고 또 한 손으로는 물살을 헤치며 뭍을 향해 나아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물살이 너무 셌다. 도대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는데 이 강물은 어떻게 불어난걸까. 하지만 나는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몹시 무서워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야유회를 간다고 좋아했던 아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이스박스 꽉 붙들어. 그리고 조금만 참아."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면서 계속해서 헤엄쳐 나갔다. 한 십 미터만 더 가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옥의 한 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육체가 극한의 고통에 내맡겨진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오르고 거센 물살을 감당하기 버거운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차가운 강물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동료들과 동료의 아이들이 내지르는 아비규환의 절규. 하지만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

 

 "꽉 붙들어. 다 왔어."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안심시켰다.

 

 이제 거의 다왔다. 정말 거의 다 왔다. 내가 아이스박스를 힘껏 밀어내면 아이는 안전하게 뭍으로 밀려날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헤엄쳐 가면 된다.

 나는 아이스박스를 밀어 아이를 안전하게 뭍에 닿게 했다. 됐다. 아이는 이제 무사하다. 힘을 내 조금만 더 헤엄쳐 나가면 된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숨이 꽉 막히고 근육에 힘이 하나도 없다. 이미 반쯤 헤엄쳐왔을 때부터 힘을 다 소진한 모양이었다. 다만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

 

 나는 지금 점점 뭍에서 멀어지고 있다. 물살이 너무 세다. 물살은 아이와 나를 자꾸만 멀어지게 한다. 아이가 애타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걱정 마,라고 아이에게 소리치고 싶지만 입 안에선 그 어떤 단어도 발음되어 나오지 않는다. 어서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하는데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내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

 

'12살 아들은 살리고...'

 

 

2009년 9월 3일 목요일

우아함에 대해

  잔잔한 물 위에 떠있는 백조의 모습은 너무나 우아해 보인다. 그의 흰 깃털에 한 줄기 햇볕이라도 비추면 어디선가 은은한 하프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신비롭기까지 하다. 물론 백조가 그렇게 우아함을 뽐내고 있는 사이 물 아래 담긴 발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이미지 실추 정도로는 백조의 우아함에 전혀 흠집을 내지 못한다. 물 아래 발이 아무리 재빠르게 움직인다 해도 물 위에서의 백조는 충분히 우아할 만큼의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거지는 우아하게 밥을 먹지 않는다.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다. 때문에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음식을 입속으로 집어넣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거지에겐 우아해야 할 여유가 없다. 거지에겐 늘 음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음식이 있다면 부지런히 뱃속으로 밀어넣어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일년, 이년... 평생 안정적으로 음식이 제공된다면 거지는 심각하게 우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우파루파

일본 방송에 나온 우파루파 튀김

 

우파루파가 먹이를 먹는 모습

 

* 우파루파는 아주 귀엽게 생긴 도롱뇽 생물체. 멕시코 도롱뇽이라고도 하는데 어릴 때의 모습은 꼭 인형 같이 생겼네요. 그런데 다 큰 녀석은 약간 징그러울 수도 있겠더라구요. 크기도 큰 편이고 동글동글한 얼굴생김이 좀 사라짐. 아무튼 잘 먹고, 잘 자라니까 애완용으로 쉽게 기를 수 있다네요.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원 정도에 팔더군요.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나로호

 지금 나로호는 우주의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발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목표한 궤도 진입에는 실패한 것이다. 절반의 성공이지만 절반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늘은 우연히 나로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TV로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나로호에 별 관심이 없었다. 며칠 전에 발사시도를 했었지만 자동 프로그램에 의해 발사 7분전에 중지된 사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나로호 발사 과정을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복기해 본다.

 

 - 아무리 생각해도 태극기는 우주선에 너무 잘 어울린다. 흰 바탕의 우주선에 자연스럽게 새겨진 태극기. 나로호에 그려졌던 태극기를 일장기나 성조기로 바꿔 생각해 봐도 결론은 태극기다.

 

 - 의자 등받이는 왜 이렇게 뒤로 눕나. 우등버스의 좌석은 가끔 이런다. (고속버스를 타고 있었다.)

 

 - 드림 시어터의 음악과 우주선을 발사하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 역시 드림 시어터는 천재군. (발사 10분 전까지 드림 시어터를 듣고 있었음.)  

 

 - 한승수 총리는 저기 와서 승수를 쌓아가겠군.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총리를 보고. 물론 궤도진입 실패를 모를 때.)

 

- '목표'를 '목포'로 자꾸 실수한다. MBC 아나운서도 그랬고, 나로호 발사 관련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목포'를 생각하고 말하면 정확하게 '목표'라고 발음할 수 있을까?

 

  *

 

 나로호의 궤도 진입 실패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름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어차피 목표는 2025년 달탐사라고 한다. 상처 없는 영광이 어딨겠나.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머리카락

 하수구가 막혔다. 샤워를 하는데 욕실 바닥에 고인 물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범인은 머리카락이었다. 매일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결국엔 하수구를 꽉 막아버린 것이다. 수챗구멍의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집어 넣어보니 이끼가 젤리처럼 붙어 미끈미끈한 머리카락 뭉치가 만져졌다. 더러운 이끼가 묻은 머리카락 뭉치는 뭐랄까... 좀비의 물컹한 혓바닥을 만지는 것처럼 굉장히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나는 이내 속이 메스꺼워 졌다.

 

 머리카락이 너무 하수구 깊숙히 박혀 있기에 손가락으로 빼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방안을 뒤져 마땅한 도구를 찾아보았다. 볼펜, 가위, 병따개 이런 쓸데 없는 것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클립을 발견했다. 클립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그런대로 쓸만했다.

 꽤 많은 양의 머리카락을 하수구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머리카락이 빨려들어 갔나 싶을 정도였다. 하루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만들어낸 결과치고는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하수구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물은 막힘 없이 하수구를 통해 빠져나갔다. 하지만 작업을 다 끝내 놓고 나니 손가락엔 훈장처럼 상처 하나가 남게 되었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기특한 발상


 지금 생각해 보면 왜들 그렇게 진지하게 계주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기로 학교 체육대회 때 가장 긴장감을 느끼게 하던 순간은 다름 아닌 계주였다. 특히 대표로 뛰는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했는데, 실수로 바톤이라도 떨어트리면 마음 약한 여학생은 얼굴을 감싸고 울기 까지 했다. 반대로 다른 팀들과의 차이를 많이 벌려 놓으면 거의 영웅이 되다시피 했다. 물론 진지한 승부도 좋지만 즐기는 자세도 좋지 않을까.
 
*  설마 확성기의 저 목소리는 경주가 끝나고 저반 학생들을 불러 줄빠따를 날리는 건 아니겠지. 발상이 기특하지 않은가?^^

2009년 8월 8일 토요일

광화문광장, 밤

 

 광화문광장에 다녀왔습니다. 매일 출퇴근 길에 지나치긴 하지만 특별히 가고 싶은 맘도 갈 일도 없었죠. 오늘은 그냥 저녁 먹고 산책 겸 다녀왔습니다. 낮에 볼 땐 시멘트 밖에 안 보여 황량해 보이더니 밤엔 좀 낫더군요. 그런데 실제 보다 그림이 이쁘게 나왔네요. 사진빨, 조명빨 .ㅋㅋ

 

 * 단, 분수에서 노는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 보였습니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나무의 스트레스

 

 나무는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고 싶어도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아 도무지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무는 늘 귀를 닫고 싶고, 눈과 입을 막고 싶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매케한 매연은 귀를 혼란에 빠트리고 눈과 입을 따갑게 한다. 사람이라면 미쳐도 이미 단단히 미쳤을 것이다.

 

 새벽이 되어서도 나무는 잠들 수가 없다. 오늘도 누군가 나무의 발밑에 뜨끈미지근한 구토를 해놓고 사라졌다. "참 나 드러워서..." 나무는 하루 하루 그렇게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살았다. 발로 차는 사람, 가지를 꺾는 사람 모두 다 참아냈다. 심지어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 적도 있었다. 이사는 나무를 굉장히 지치고 목마르게 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나무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나무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하나 하나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무는 견딜 수 없는 화를 느낀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활화산이 되어 한꺼번에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무는 뿌리부터 잎사귀 하나 하나까지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나무는 땅에 밖혀 있던 뿌리를 스스로 뽑아냈다. 터벅터벅. 나무는 이제 걷기 시작했다. 나무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흙과 잎사귀가 떨어졌다.

 

 나무는 허름한 술집으로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나무가 술집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이윽고 나무가 시킨 피처가 나왔다. 나무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봐요, 그쪽 나뭇잎이 자꾸만 제 쪽으로 떨어지잖아요."

 옆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여자가 나무에게 따졌다.

 "미안합니다. 머리를 안 감았더니 비듬이..."

  나무는 불쾌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무는 바텐더에게 술값으로 잎사귀 세 잎을 던져주고 술집을 나왔다.

 

 나무가 반대편 길로 가려는데 조금전 술집에서 계산을 했던 바텐더가 나무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바텐더는 나무에게 말했다.

 "여기, 거스름 돈이요."

 나무의 손에는 어느새 파릇파릇한 나뭇잎 반장이 쥐어져 있었다. 술값은 나뭇잎 두 장 반이었던 것이다.

  '흠, 싸네. 내일 또 와야지.'

 나무는 그날 이후 술꾼이 되었다.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유진박

요며칠 유진박에 관한 기사와 글들을 많이 읽으면서 세상은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다. 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도 사람들도 좀 더 독해지길 바란다.

 

 

2009년 7월 31일 금요일

rainy day

 

비가 내려 생긴 작은 물웅덩이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비춰집니다. 거기로 빗방물이 떨어져 또 그만큼의 파문을 만들어 내죠. 세상은 이렇게 소리 없이 아름답네요.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베로니카스, 아이구글

 Veronicas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른 교보문고. 평소처럼 핫트랙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비가 그쳐 있을 것 같았다.(실제로 어느 정도 비가 그쳐 있었다.) 새로나온 앨범들을 청음하고 있는데, 눈앞에19금 딱지가 붙은 앨범이 있길래 바로 플레이시켜 봤다. 오, 댄스 음악이었는데 괜찮았다. 집에 와서 검색해 봤더니 베로니카스라는 여성 듀오였다.

 

 아이구글

 

 인터넷 시작 페이지를 아이구글로 설정했다. 이제 포털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좀 해방되려나?^^

 

   

2009년 7월 19일 일요일

군대스리가의 추억

 오른쪽 코너 플랙 근처에서 강상병이 크로스한 볼이 내가 서있던 문전 중앙 쪽으로 날아올 때, 어쩐지 저 공이 꼭 나에게로 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정말로 공은 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장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볼을 가슴 트래핑한 후 슛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골문을 향해 다이렉트로 차넣을 것인가.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 상황에서 나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마음은 평온했고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공이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날아왔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허공 위로 날렸다. 그리곤 지체 없이 발로 공을 힘껏 때렸다. 시저킥이었다. 내가 찬 공은 골대 좌측 상단의 구석진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물이 미친듯이 출렁거렸다.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던 골키퍼는 연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군대스리가 마지막 골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후에 나는 전역했다.

 

*

 

 내가 군대스리가의 첫경기를 경험한 것은 입대한 지 백 일이 조금 지난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고참 심부름에 한해 PX 출입이 허가되고, 선임병에게 보고하지 않고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짬밥이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난 내무반의 막내였다.

 

 내가 취사반에서 PET병에 얼린 물을 한 아름 받아왔을 때 고참들은 막 전반전을 끝내고 하프타임을 보내기 위해 그늘이 있는 락커룸(연병장 사열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대다수의 고참들은 걸어오면서 이미 웃통을 벗어제쳤다. 빨갛게 익은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모습은 꼭 뜨겁게 익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벗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얌마. 뭐가 힘들어. 전반 내내 걸어다니더만."

 

 분대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널부러져 있는 고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 지고 있는 상태로 전반을 마친 모양이었다. 분대장이 소리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라이벌 내무반과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분대장부터 왕고, 투고, 쓰리고까지 돈을 모아 내기를 하는데 지면 당연히 자기 돈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군인들 용돈 다 모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자존심도 좀 걸려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까. 테니스병 오현록이 저놈이 오면 두 세명이 무조건 달려들라니까. 왜 어물쩡 거리고 있냐."

 

  분대장은 지쳐서 헐떡 거리며 누워 있는 고참들을 향해 별로 작전이랄 것도 없는 작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김상훈이!"

 

 "예, 이병 김상훈!"

 

 "너, 그딴식으로 밖에 못하냐. 왼쪽이 뻥뻥 뚫리잖어 임마!"

 

 분대장은 급기야 내 바로 윗고참인 김이병에게 집중포화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몸이 굼뜨고 말투가 어눌한데다가 실수를 밥먹듯이 해서 고참들로부터 이미 찍혀 있는 상태였다. 내가 자대배치를 받기 전부터 그는 이미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반 고문관이었던 셈이다.

 

 "분대장님, 시원한 얼음물 가져왔습니다."

 

 나는 깨끗한 컵에 얼음물을 따르며 분대장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고생이 많다."

 

 분대장은 김이병을 혼내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단숨에 물 한 컵을 비웠다.

 

 "그런데, 너 공 좀 찰 줄 아냐?"

 

 빈 컵에 새물을 따르던 내게 분대장이 느닷 없이 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잘 못 찹니다"라고 신참내기 특유의 겸손을 떨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예, 조금 찰 줄 압니다!"

 

 그렇게 당돌하게 대답했다. 뒷통수에서는 김이병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오호, 그래? 후반전엔 막내 니가 뛴다. 김상훈이 넌 물이나 떠와 섀꺄!"

 

 이렇게 해서 이날 나는 군대스리가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물론 그날 우리 팀은 전반에 벌어진 점수차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분대장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점호시간에 분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막내 너는 미드필더로 뛰어라이."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이다. 7급 공무원을 갑자기 차관급 위치로 격상시키는 정도의 파격이었다.

 

 다음 날 고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대 내무반 분대장이 나의 플레이를 극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분대장이 뿌듯해 했다는 후문이다. 감독 겸 구단주(분대장)의 신임을 얻게 된 나는 이후 라이벌 매치에서의 압승은 물론 각종 대대 컵대회와 포상휴가를 거머쥐며 물오른 활약을 펼치게 된다.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대화

여 : 나와, 영화보여 줘.
남 : 안 돼.
여 : 왜?
남 : 입을 팬티가 없어.
여 : 팬티 안 봐, 나와.

남 : 안 돼.

여 : 왜?

남 : 신을 양말이 없어.

여 : 뒤집어 신어, 나와.

남 : 안 돼.

여 : 왜?

남 : 나는 심장이 없어.

여 : 오늘도 뻔한 거짓말을 해.

합창 :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런데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물어~♬

 

 

2009년 7월 13일 월요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오늘 낮에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각 방마다 얇은 칸막이로 막혀 있는 그런 식당이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늘 그렇듯이 한 동료가 회사의 잘못된 점과 상사의 안 좋은 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아마 이 나라의 대부분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 또 다른 동료 하나가 갑자기 엄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갖다 대는 시늉을 보였다. 순간 밥 먹는 것을 멈춘 우리들에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옆방에서는 상사 일행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뿔사 여기는 방음이 형편없는 식당인 것이다. 게다가 그 동료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아이가. 아마 다 들었을 것이다. 옛 속담 틀린 거 하나 없다.

 

 1+1

 

 편의점 냉장고에서 캔커피를 하나 골라 계산대에 올려 놓으니까 점원이 하나를 더 고르라고 한다. 내가 고른 캔커피가 원 플러스 원 행사중인 제품이란다. 나는 이게 웬 떡인가 하고 커피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커피 값은 구 백원. 그러니까 구 백원 벌은 셈이다.

 "횡재한 것 같죠?"

 잔돈을 거슬러 주면서 점원이 말했다.

 "예."

 

 

*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이 말을 과학적으로 증멸할 수 있다고 한다!

 

    http://k.daum.net/qna/view.html?qid=3jAzI

 

 

 

2009년 7월 5일 일요일

세종대왕이 떡볶이 먹었대

 조이박스의 노래제목이다. 며칠전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다. 조이박스는 '거리의 시인들' 출신인 리키.P가 결성한 혼성 록밴드라고 한다.

 <세종대왕이 떡볶이 먹었대>는 바로 1집 앨범에 실린 곡이다. 곡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랫말이 굉장히 재밌는 곡이다. 음악도 이만하면 꽤 잘 만들었다. 처음에 나는 음악이 먼저 귀에 들어왔다. 음악 좀 하는 밴드인 것 같다.

 

 곡 들으러 가기

 

 

 

 

 

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청계천 나들이

 

 아마 고산자교 근처일 것이다.(가까운 곳에 용두역과 홈플러스가 있음) 2년전 신설동에 살 때는 산책 겸 정말 자주 왔었던 곳이다. 여기 농구장에서 농구도 했었는데 그때는 맨땅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짜 청계천을 보고 싶다면 이 부근을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로 쪽은 시멘트 느낌이 너무 강하다.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지식인에 굴욕당한 사건

'다음'에도 지식인 서비스가 있는데, 여러 카테고리 중 '어린이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4학년입니다. 외떡잎 식물과 쌍떡잎 식물을 알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이 올라오면 "6학년입니다. 외떡잎 식물은... 쌍떡잎 식물은...어쩌구...저쩌구..." 답변을 해준다.

 

 이용자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라 그런지 숙제에 관한 질문이 태반이다. 가끔은 재밌는 질문도 올라오곤 하는데 몇 번 답변을 달아준 적도 있다. 진지하게 답변을 달아준 적도 있지만 열의 한 번 꼴로는 장난으로 답변을 달아주기도 한다. 다른 의도는 없고 순전히 답변을 보고 웃으라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어제는 장난으로 답변을 달아준 것 때문에 굴욕적인 경험을 당했다. 내 답변이 삭제된 것이다. 이 소식이 한메일을 통해 도착했다. 하룻 동안 3회 이상 질문이 삭제되면 일주일 동안 활동이 금지란다. ㅋ

 

 나는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유머가 있고 여유로운 것을 좋아한다.

 지식인이라는 서비스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해 주는 서비스다. 분명 질문에 대해 성실하고 진지하게 답변을 해줘야 제대로 된 서비스가 이뤄진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어느 정도 유머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실 황당한 질문도 많이 올라온다. 한편으론 지식인도 일종의 놀이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식을 묻고 답하는 놀이터. 그리고 세상에 정확한 지식이란 게 있는 걸까? 불변의 진리도 없듯이.

 

 아무튼 앞으로 어린이 지식에 답변을 달 때 조심해야 겠다. 순진무구한 초등학생이 나 때문에 열받으면 안 되니까. ㅋㅋ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네다 아그하 솔타니

 오늘 본 장면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네다 아그하 솔타니의 죽어가는 장면이었다. 네다의 소식은 뉴스를 통해 어제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마법의 힘에 이끌리듯 유튜브를 클릭하게 되었다.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작용했나 보다.)

 

 엄청난 충격을 예고하듯 유튜브는 로그인과 생년월일 인증을 요구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하는 생각과 함께 심장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영상이 재생되자 또 다시 영문으로 경고문구가 떴다. 그리고 마침내 한 소녀가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누워있는 곳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그녀를 살려내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 있었다. 네다는 경련하듯 흰자위를 보이더니 곧바로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몸은 격렬하게 떨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분노의 탄성을 내질렀다. 엄청난 피가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내 심장의 피가 역류할 준비를 하는 사이 짧은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참으로 농담 같은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이민정의 입대축하 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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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CF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한 남학생에게 과친구들이 모여 케익에 촛불까지 켜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군대가면 '개고생'이라는데 "어떻게 위로는 못 해줄 망정 축하를 해주냐"는 것이 비난의 주된 이유다.  

 

 나도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다른 네티즌들과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었다. 내 기억으로도 군대는 인생 중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즉각적이고도 단편적인 생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분명 다른 의도로도 이 광고가 해석된다.

 

 이 15초 짜리 광고는 여러 가지 사건의 전후관계와 인간관계의 암시를 보여준다.

 우선 이 광고에서 입영통지서를 받은 남학생과 극중 이민정은 연인사이가 아니라고 생각된다.(연인이라면 저렇게 축하해 줄 순 없다.) 오히려 남학생의 옆에 앉아있는 안경 낀 여학생이 연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 여학생의 표정을 보면 근심이 가득하다. 아마 남학생을 좋아하지만 아직 고백은 못 했고 입대하기 직전 힘들게 고백할 것 같다. (그 고백을 남학생이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받아준다면 면회를 자주 갈 것 같고, 제대까지 기다려 줄 것 같다.)

 

 광고에서 이민정이 과대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 축하파티를 주선했을 것 같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남학생의 입영통지서 수령을 축하할지 위로할지 함께 모여 고민했을 것이다. 다른 예비역 선배들에게 자문도 구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저 축하파티다.

 

 군대에는 온갖 부류의 젊은 남자들이 온다. 건달, 모범생, 날나리, 공대생, 마마보이 모두가 군대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온다. 방식도 가지가지다. 건달의 경우 훈련소 앞에서 건달친구들은 어깨를 팍 치면서 말한다. "X뺑이 쳐바라." 그리고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는다.  

 모범생 어머니는 훈련소 입구부터 눈물을 훔친다. 애인과 같이 온 남자는 오히려 펑펑 우는 애인을 위로하느라 애쓴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 말할 순 없다. 군대를 제대한지도 한참이 지난 내가 생각할 땐 서로 웃으면서 떠나고 보내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마지막 모습이 우는 모습이라면 그 모습이 가슴 아파 군생활하기 힘들다.

 

 광고 속의 이민정과 친구들은 파티때 그랬던 것처럼 케익을 사들고 가끔 남학생에게 면회를 갈 것이다.(마지막 장면은 면회를 가기 위해 케익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부대에서 만난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울면서 떠나보냈지만 바로 두 달 후 고무신 거꾸로 신어버리는 애인보다는 더욱 진심이지 않을까. 진심이란 게 꼭 심각한 얼굴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아이폰

 어제 저녁 KT에서 7월에 아이폰을 출시한다는 기사가 떴었다. (오늘 낮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무근이라는 기사도 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KT와 애플이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애플은 한국시장에 구형 3G폰 처분을 바라고 있고, KT는 야심차게 소비자를 끌어모으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아무튼 핸드폰 바꿀 때도 됐는데 출시됐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3GS로 말이다.

 

 

 

 

2009년 6월 15일 월요일

좋아해요

"좋아해요."

"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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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 우렁된장찌게로 통일 시킵니다."

"네, 좋아요."

 

 

 

* 전체에서 부분을 잘라내면 이렇게 다르다.^^

2009년 6월 14일 일요일

6월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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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 뒷편에 핀 장미. 벌써 시든 장미가 여럿 보입니다. 설마 밤새 피부관리가 안 된 장미들이 사진 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건 아니겠죠?^^;;

2009년 6월 7일 일요일

Destiny

 


얼마전 뮤직 쉐이크로 만든 곡임.

음원파일 업로드 금지 기념으로 올립니다. ㅋㅋ

(방법은 많으니까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군요.)

 

 

 

2009년 6월 6일 토요일

죽음

 아직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물론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친척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염을 하는 장면을 지켜본 적은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 영안실에 누워있던 할머니의 모습은 잠을 자는 듯 고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죽은 사람이 아닌 영원히 잠들어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기로 했었다.

 

 사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볼 기회는 진작에 있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학교 담장 너머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담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버스가 사람을 친 것이다. 나는 사고가 난 장면을 볼 수 있는 상황에 있었지만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겁도 났다. 애들이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사람이 죽은 모양이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어떤 노파였는데 한 쪽 팔이 들려져 있었다고 한다. 뭔가 손짓을 하려다 멈춘 듯이 말이다.

 죽은 사람이 팔을 들고 있다니... 나는 좀 무서웠지만 남들이 다 보고 있는 그 장면이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도 끝까지 공포영화를 보는 아마 그런 심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담장 곁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왠지 죽은 사람을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나를 말렸다. 죽은 사람도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더구나 아직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두려웠다.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플까. 손끝에 작은 상처만 나도 쓰리고 아픈데...하물며 죽은 다는 것은... 나는 그런 무거운 마음을 갖고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위험한 식사

 밥을 먹는 행위는 어쩌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거의 매일 밥먹는 것에 성공하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매일 목으로 어떤 이물질을 넘긴다고 생각하면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음식물을 먹다 기도가 막혀 죽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은가.

 

 오늘 나는 저녁을 매우 급하게 먹었다. 기분도 썩 유쾌하지 않은 상태였고 또 밥을 빨리 먹어야만 할 상황이었다. 나는 거칠고 딱딱한 돈까스 조각을 대충 두 세 번 씹은 다음 식도로 넘겨버렸다. 양 볼이 꽉 차도록 계속해서 밥을 밀어넣었고, 된장국은 그릇채 들고 마셔버렸다. 반찬? 한가롭게 그것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이러다 체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늘 나의 식사시간은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소화가 정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식도와 위 사이 구간에 정체가 생긴 게 느껴졌다. 만약 교통방송의 아나운서였다면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멘트를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콜라를 사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으로 나는 일 년에 두 세 번 정도 콜라를 마신다. 콜라를 마시면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콜라(탄산수)의 용도는 소화제였다고 알고 있다.

 

 벤치에 앉아 캔콜라를 마셨다. 때마침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어서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 식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생각했다. 앞으로 남은 식사들은 또 얼마나 위험한지를...

 

 

2009년 6월 1일 월요일

주사바늘의 위협

 처음에 우리들은 대부분 총명하고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총명함은 점차 흐릿해졌고 상상력은 금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매년 우리리에게 이상한 약을 주입했다. 그 약을 주입하는 데는 한 명의 열외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눈을 꼭 감고 머릿속으로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을 생각하며 주사를 맞곤 했다. 개중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안 아프게 놔주세요"라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가에 맺히는 눈물은 어쩔 수 없었다.

 

 한 해, 한 해 몸속으로 약이 주입될수록 우리의 정신은 점차 몽롱해지고 무감각해져 갔다. 그 약의 덕분이었을까. 마침내 우리는 사회에 순종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는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유산을 갖고 있었다. 문화는 아름다운 것이며 진리라고 사회는 강조했다. 물론 아주 소수의 사람 중에는 그것이 세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아이였을 때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정신은 몽롱하고 상상할 수 있는 머리는 굳어버렸다. 세상을 섬세하게 느끼던 감각은 이미 죽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새벽별이 뜬 아침 졸린 얼굴로 출근했다가 어둠침침한 늦은 저녁 시든 배추처럼 퇴근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밥벌레 같은 삶에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무의미한 삶, 쫓기는 삶 그것이 우리의 것인데도 우리는 동상에 걸린 듯 무감각하다.

 

 나는 무섭다. 끝이 뾰쪽한 주사 바늘이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어릴 적 죽을 힘을 다해 주사 바늘에 저항하던 적이 있었다. 필사적으로 뿌리치던 나를 엄마, 아빠, 의사, 간호사할 것 없이 붙잡으려 하던 모습이 필사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9년 5월 31일 일요일

고통

 당신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또 얼마나 모진 채찍질을 가했을까. 그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스스로가 부서지고 깨지는 것 따위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위 밑으로 몸을 던졌던 것일까. 스스로 마음을 때리듯 당신은 그렇게 몸을 힘껏 때렸던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마지막 당신이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그 고통이 내게는 너무 아득해서 짐작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아무리 당신을 편하게 보내준다 한들 당신의 마음이 산산이 찢어지고 당신의 육체가 짓이겨 깨지는 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당신은 그렇게 홀로 외롭게 피흘리며 이 세상을 떠나갔다. 세상은 이렇게 아픈 곳이다. 우리는 어쩌면 거의 매일 신음하듯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대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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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에 대한문 앞을 다녀왔습니다. 조문행렬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대한문에서 시작한 줄이 서울시립미술관까지 이어졌으니까 엄청 긴 행렬이었죠.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구글이 음원파일 업로드를 금지시킨 진짜 이유는?

 며칠 전부터 텍스트큐브닷컴에는 mp3파일은 물론 wma파일 심지어 wav파일까지 올리지 못한다. 텍스트큐브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구글이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구글이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구글이 왜 이럴까? 더위를 먹었나?  국내에 있는 경쟁업체도 이 정도로 심하게 규제하지는 않기 때문에 구글의 속이 더욱 더 궁금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음악저작권 보호와 불법과 합법 파일을 구분할 수 없는 기술적인 이유를 들고 있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대충 눈치를 채고 있는 모양이다.

 

 구글이 연약해진 이유는 구글코리아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최시중 방통위원장말이다. 지난 번 유튜브 문제로 위원장 나리께서는 구글코리아를 예의주시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마 그래서 구글이 몸을 사리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결국 현 정권 때문에 음악파일도 못 올리는 건가? 설마!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

 

 

 

 

 

구글 티셔츠 도착!

 

 사실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택배로 구글 티셔츠가 도착했습니다. 포장지 안엔 작은 엽서도 있더라구요. 그런데 사이즈가 무려 XXL입니다. 저는 M을 입는데 세 단계나 더 큰 사이즈가 온 것이죠.

 그래도 당첨된 게 어딥니까. 올해에 벌써 세 번째 이벤트 당첨이군요.^^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모래사막과 전갈

 방청소를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방안엔 하루 하루 먼지가 쌓여 갔다. 어느 날인가 나는 방안에 들어서면서 발밑에 까끌까끌한 모래 알갱이가 밟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나는 청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래를 대충 방구석으로 밀어냈다. 내 방안엔 점차 모래 알갱이가 늘어나게 되었다.

 

 또 다시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제 내 방이 완전히 모래로 뒤덮여 버린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옆집에 공사용으로 사둔 모래가 실수로 내 방에 잘못 쏟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옆집에서 공사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모래들은 그동안 쌓여왔던 먼지들이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삽으로 퍼도 며칠이 걸릴 만큼 방안엔 모래가 많았다. 청소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모래 위에서 생활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만 빼고는 그리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방에 들어올 때 먼지를 털 필요가 없으니까 그 점은 맘에 들었다.

 

 점점 높아만 가던 모래가 마침내 침대까지 덮어버렸을 때, 나는 모래 위에 보자기를 깔고 잠을 잤다. 사방이 고요하고 달이 뜬 밤이면 사막 한 가운데서 잠을 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막의 한 가운데는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하다고 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봤지만 지구의 자전 소리는 듣지 못했다. 자전거 소리는 들었던 것 같다.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였다. 등에서 뭔가 따끔한 것이 찌르는 게 느껴졌다. 그게 뭔가 하고 손을 가져갔을 때 나는 깜짝놀라고 말았다. 딱딱한 등껍질을 가진 전갈 한 마리가 만져졌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살아있는 전갈을 본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는 많이 봤었다. 그것은 전갈임이 틀림없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고 이마에선 땀이 났다.  
 나는 전갈을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이내 전갈의 몸통과 가슴이 분리됐다. 그러나 전갈은 죽지 않았다. 몸이 분리되어서도 끊질기게 나를 공격했다. 화가 잔뜩 난 전갈은 날카로운 침으로 나를 힘껏 찔렀다. 윽. 나는 너무 아파 눈물을 흘렸다.

 

 꿈에서 깼을 때  나는 다짐했다. '청소를 해야겠구나.'

 

 

 

 

2009년 5월 11일 월요일

 지금은 간신히 비의 유혹을 뿌리치고 방안에 안착해 있다. 그러나 아직도 비가 붙잡고 놓지 않았던 소매자락엔 물기가 남아있다.

 

 사실 비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의 음악소리로 귓가를 흠뻑 젖게 했다.

 또 비가 내리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영상이다. 나는 지상 4층 높이에서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파문이 퍼지는 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사선을 그으며 지나가는 빗줄기도 꽤 오랫 동안 바라본 것 같다.

 

 비와 커피는 마치 하이퍼 링크로 연결된 하이퍼 텍스트 같다. 좋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커피가 생각나고 반대로 커피를 마시면 좋은 음악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커피와 음악, 아무래도 이 둘은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모르지만 둘 사이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고즈넉하게 방안에 앉아 비의 음악을 듣는 시간.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커피를 마시는 수밖엔.

 

 

 

2009년 5월 9일 토요일

구글 우수 블로거 지원 프로그램

구글 우수 블로거 지원 프로그램

 

 우수 블로거 100명을 선정한답니다. (뒷북^^;) 아무튼 우수 블로거가 되실 분들 미리 축하드립니다. (<-요건 앞북. ㅎ)

 

 

브로콜리 너마저

 마치 개그 프로에 나오는 유행어처럼 들리지만 4인조 혼성 밴드입니다. (물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죠.) 노래들이 다 좋은데 특히 '앵콜요청금지'란 곡이 맘에 든다. 이들의 앨범은 전체적으로 멜로디는 부드럽고 노랫말은 예쁘다.

 

 

 

2009년 5월 2일 토요일

야구와 5월

 





 


 오늘이 5월1일(근로자의 날)인 탓에 회사일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끝났다. 회사 건물을 막 나왔을 때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그라운드 위의 푸른 잔디였다. 5월과 그라운드 위의 초록색 잔디는 어쩐지 너무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무작정 목동 야구장으로 향했다.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생각해 보니 야구장은 참 오랜만이 아니라 생전 처음으로 온 것이었다. 그동안 왜 안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 대통령배 고교야구 4강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기는 누가 보기에도 투수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충암고와 대구 상원고와의 경기였는데 두 팀 모두 에이스를 내보낸 것 같았다. 결국 충암고 투수는 상원고 투수보다 안타를 덜 맞고도 패배의 멍에를 쓰게 됐다. 상원고 투수의 위기관리 능력이 좀 더 뛰어났던 것 같다.


* 내일이 결승전인데 어쩌면 또 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그나마 목동이 가장 가까운 야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록색 그라운드를 조금 더 보고 싶다.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 L은 한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닌다. 그는 가끔 본사가 있는 뉴욕으로 출장을 간다고 한다. 얼마전에도  L은 회사의 중요한 일로 뉴욕 출장을 떠났었다. 일을 마치고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좀 남자 그는 시간을 때우려고 어느 술집에 들어갔다.

 

 그는 술집에서 잭 다니엘에 콜라를 섞은 잭콜을 시켰다. 그리고 첫 잔을 막 비웠을 때, 갑자기 어떤 미녀가 다가오더니 그에게 두 번째 잔을 사주고 싶다며 말을 걸어왔다. L은 그 여자의 과감성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훤칠하고 잘생긴 자신의 외모가 한국 밖에서도 당당히 통한다는 생각에 조금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좋습니다."

 

 L은 쿨하게 대답했다. 미녀는 뒷편에 있는 바로 향하더니 양 손에 술잔 하나 씩을 들고 돌아왔다. 한 잔은 L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한 잔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L은 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기분좋게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그 미녀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다음날 어리둥절한 상태로 눈을 떴을 때, L은 호텔 욕조 안에 누워 있었고 욕조에는 차가운 얼음이 둥둥 떠있었다. L는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의아해하며 정신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움직이지 말 것! 911에 전화하시오.'

 

 누군가 미리 준비한 듯 욕조 옆 작은 탁자 위에는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L은 전화기를 집어들고 즉시 911을 눌렀다. 얼음 때문인지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안내원이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지금 L이 처한 상황에 꽤 익숙한 것 같았다. 안내원이 말했다.

 

 "선생님, 등 뒤로 손을 뻗어보세요. 천천히 조심스럽게요. 혹시 허리에서 튜브가 튀어나와 있는 게 만져지지 않나요?"

 

 L은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등 뒤를 더듬거렸다. 순간 것잡을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튜브가 만져졌던 것이다.

 

 안내원이 말했다.

 

 "놀라지 말고 제 말 잘 들으세요. 선생님은 어젯밤 신장을 도둑 맞으신 겁니다. 요즘 이 도시에서 장기 절도 조직이 활동중인데, 유감스럽게도 선생님이 그 피해를 입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즉시 응급요원을 보내드릴 테니 그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 굉장히 충격적인 얘기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얘기는 실화가 아니고 지난 15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유행한 도시 전설이라고 한다. (친구의 친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희한한 일을 많이 겪기도 한다.^^) 물론 그 내용을 살짝 비틀은 것임.

 

* <스틱>이라는 책의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스티커 메시지의' 많은 요소를 갖추었다고 한다.

 

2009년 4월 18일 토요일

도시락 그리고 114 안내원

"도시락이 안 되서 전화드렸습니다."

 

 나는 전화를 걸자 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내원은 분명 어떤 매뉴얼이나 절차에 따라 내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목소리도 일부러 최대한 시크한 티를 내려 애썼다. 그런데 안내원은 내게 의외의 답변을 늘어놓았다.

 

 "고객님, 어디에 전화거신 겁니까? 여긴 114입니다."

 

 "거기, K*F 아닌가요?"

 

 "아닙니다. 고객님."

 

  순간 멋쩍어진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안내원이 나를 완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14에 전화해 놓고는 대뜸 도시락이 안 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내가 저녁때쯤 전화를 걸었으니까 114를 도시락집으로 착각하고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필 왜 서비스 명을 도시락이라고 했을까. 뮤직파이, 뮤직스테이션, 뮤직앤해피 이런 식으로 했으면 오해샀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 해도 될 텐데 말이다.

 

- 오늘 하루 도시락이 불편했던 1人

 

   하지만 고양이를 보면 웃음이...^^

 

 

2009년 4월 15일 수요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상하게도 요며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내 뇌리를 자주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그것은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회사가 끝나고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 오늘은 아예 처음부터 일본문학 진열대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어렵지 않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1, 2권이 나란히 진열대에 꽂혀 있었다. 마치 내가 빌려갈 것을 미리 알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땐 1권도 채 다 못읽었고, 읽었던 내용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표지와 앞뒤 몇 장을 훑어보니 과연 지금 나에게 가장 일용할 양식이 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그책 두 권만 빌리고 도서관을 나왔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와서, 씻은 후에 나는 비로소 책을 펼쳐들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조금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소설의 첫 장이 시작하기 전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왜 지금도 끊임없이 빛나고 있는 것일까

 새들은 왜 마냥 노래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세계가 벌써 끝났다는 것을

 

 시처럼 보이는 그 글은 Skeeter Davis가 부른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오늘 내가 산책을 나갔을 때 흥얼거렸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
...

 

 - <The end of the world>

 

 

 

2009년 4월 8일 수요일

가난한 사랑

 중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아이를 끌어안은 어머니들 혹은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그네들이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서는 짙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이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배우도 그 장면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번은 밤길을 걷다가 더럽고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고 구걸하는 모자를 본 적이 있다. 모자의 모습이 내 망막에 비친 순간 그 가여운 이미지가 그대로 판화처럼 박혔다. 내색은 안 했지만 속에서 뭔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가난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적당한 건강함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는 아닐까. 아이를 끌어안고 있던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남루하고 허름했다.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 그랬다. 나는 비싼 옷을 입혀 주고, 해외유학을 보내주는 것보다 다정스럽게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부정과 모정. 아무래도 난 그런 것들에 약한 것 같다.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아름다운 기사

WBC 에 나오는 미국팀은 월드컵에서의 잉글랜드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그 종목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프로리그를 가지고 있으나 결코 우승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잉글랜드는 똑같다.

 

물론 국제경기에서 역사나 개개인의 선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선수단 전체가 하나로 뭉쳐서 팀으로서 플레이할 수 있느냐인데, 현재 이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팀인 한국과, 두 차례의 WBC 우승타이틀을 모두 차지한 일본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은 이번 대회 두 팀의 5번째 격돌로서, 마치 ‘피나는 연습을 통해 꿈에서도 연기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 쇼’를 방불케 했다. 선수들은 불필요한 항의를 하지도 않았고, 판정결과에 승복했으며 상대선수를 향해 욕설을 담지도 않았다. 10 이닝 동안 오직 한 개의 에러가 나온 것을 제외하면, 결승전 경기는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웠다.

 

미국야구가 개인화, 상업화되고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며, 때로는 약물복용과 파업으로 얼룩져있는 동안 한국과 일본은 야구가 아직도 아름다운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것이 미국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야구라고 해도 말이다.

 

* CNN기사라고 하는데 뉴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군요.^^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떡볶이 페스티벌

http://www.topokki.com/

 

 이런 페스티벌이 있군요. 미투에 갔는데 저의 '미친'들은 완전 열광하고 있군요. 락팬들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보다 더한 반응. ㅋㅋ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카인과 아벨

 드라마 '카인과 아벨'은 여러 가지 대립구도가 서로 얽혀 있다. 이선우(신현준) 대 이초인(소지섭), 뇌의학센터 대 응급의학센터, 이종민 원장(장용) 대 나혜숙 부원장(김해숙 : 지금은 일방적으로 부원장 쪽이 우세하지만), 그리고 김서연(채정안) 대 오영지(한지민 : 이 두 여인도 곧 연적관계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카인과 아벨'은 여러 가지의 대립구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8회까지 진행된 지금은 그 갈등구조가 정점을 유지한 답보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문득 한 가지 대립구도가 더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남과 북이다. '카인과 아벨'처럼 한 형제지만 엇갈린 운명을 갖는 것이 남북의 현 상황과 꼭 닮아있다. 그러고 보면 대립구도는 왠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건 어쩌면 남과 북이라는 거대한 대립구도 속에 살고 있는 특수성 때문은 아닐까.

 

 * 사실 며칠 전 동네에서 우연히 소지섭을 봤다. 한 3~4 미터를 두고 스쳐지나갔던 것 같다. 처음엔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칠 때쯤 소지섭이라는 걸 알았다.(키가 커서 그런지 걸음걸이가 엄청 빨랐다.) 그날 동네에 촬영이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번주에 방송을 보니 오영지(한지민)가 익숙한 곳에 서있는 게 아닌가. 그때 난 무릎을 치며 아쉬워 했다. '아우, 한지민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2009년 3월 10일 화요일

도서관에서 생긴 일-귀딜

 

 

 주인공 기욤의 맞은편 건물에는 아흔 살의 할머니가 산다. 할머니는 매일 밤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이윽고 할머니가 글쓰기를 멈추면 방에 불이 꺼진다. 우연의 일치일까. 할머니의 방에 불이 꺼지면 얼마 후 그 건물의 현관문이 열리고 한 소녀가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온다. 건물을 빠져나온 소녀는 어디론가 급히 달려간다. 그런 상황이 매일 밤 계속된다.

 

 어느 날 기욤은 그 소녀를 쫓아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이름이 '이다'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녀는 문학에 대한 열망을 지닌 할머니의 화신인 것이다. 이다가 매일 밤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문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마법서'를 찾기 위해서다. 아흔 살 할머니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결국 기욤과 이다 그리고 기욤의 친구, 이다의 분신은 마법서를 찾기 위해 책 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 주인공 기욤은 철저하게 독서를 싫어하는 소년이다. 모험을 통해 책에 점점 흥미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초대장인 셈이다. 독서로의 초대장.
  • 아흔 살이 되어서도 책 속의 할머니처럼 이루고 싶은 열망을 품고 싶다. 또 동시에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못 이룬 열망으로 조바심을 내지 않도록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도.
  • 참고로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동화책 입니다.^^

 

 

2009년 3월 8일 일요일

네이버에 보낸 메일

네이버의 깊은 배려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나 제가 쇠고랑 찰 것을 염려해 동영상을 직접 삭제해 주시는 친절함까지 베푸시다니 왜 한국 최고의 포털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동영상의 그 근저에 깔린 욕망은 영리추구와 홍보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네이버는 인간미가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이 기분 좋은 네이버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협조'하지 못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네이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굿바이 네이버.

 

2009년 3월 4일 수요일

미술관 옆 동물원

 "저기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의 한 쪽을 빼면서 여자가 내게 물었다. 그 여자는 내 맞은편에서 걸어오다 마침내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말을 건 것이다.

 왜 그러는 걸까. 아주 잠시 후면 그 여자가 나를 부른 이유가 밝혀질 텐데 왠지 나는 조바심이 생겨 물었다.

 

 "네, 왜 그러시죠?"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자 조바심은 더욱 커졌다.

 정말 왜 그러는 걸까. 길을 물으려는 걸까. 혹시 도를 아느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진득하니 일 초만 기다린다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도 나는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말이 몹시 궁금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XX미술관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도서관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 어렴풋이 내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머릿속에 있는 검색엔진을 총동원해서 기억을 샅샅히 뒤져봤다. 하지만 머릿속이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됐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분명 미술관이라고 그랬다. 미술관 같은 곳에 내가 갈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난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미술관도 모르는 야만인(?)이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아, 거기 알아요. 동물원 옆에 있는 곳 말씀하시는 거죠?"

 

 왜 하필 동물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번엔 여자 쪽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머, 그 옆에 동물원이 있나요?"

 

 "그럼요. 미술관 옆 동물원이죠."

 

 아마 한 줄기의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면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찢을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린 다음 우리 머리 위로 난데 없는 폭우가 쏟아졌을 것이다. 장마철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날씨는 너무 맑았고 계절은 이제 막 삼 월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네."

 

 "네."

 

 우리는 짧은 목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길을 갔다. 나는 그녀를 스치면서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꼭 동물원이 옆에 있는 미술관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스쳐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혹시 미술관 옆에 정말로 작은 개집이라도 있어 나의 수준 높은 유머에 탄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삼월이 시작된 거리를 힘차게 걸어갔다.

 

 

2009년 3월 1일 일요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이다. 물론 브래드 피트가 주연배우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가 얼마전에 개봉을 하기도 했다. 아마 영화의 영향으로 소설 제목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원제목이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니까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으로 해석하는게 원문에 가장 근접한 해석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민음사 시리즈의 피츠 제럴드 단편집 안에는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보다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제목이 더 매력적이고 소설의 느낌을 더 잘 살려주는 것 같다.

 

 나는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골랐는데 네 가지 각기 다른 버전이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학동네, 민음사, 북스토리, 현대문화센타 이 네 개의 버전 중에서 나는 북스토리(이미정 번역)를 골랐다. 물론 출판사의 권위나 명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으나 가장 트렌디한 문체로 읽기 편하게 옮겼다는 것이 선택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북 디자인도 가장 맘에 들었다.(당시에 쓴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원한다면 문학동네나 민음사 버전을 고르면 좋을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은 한 마디로 벤자민 버튼이란 사람의 인생의 모래시계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칠십대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다 마침내 영살이 되어 죽는 한 남자의 이야기. 보통 나이를 먹어도 철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너는 나이를 거꾸로 먹냐?"(군대에선 "넌 짬밥을 꺼꾸로 먹냐?!")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벤자민 버튼은 실제로 나이를 거꾸로 먹는 인물이다. 때문에 별 희한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그래서 초반엔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장면이 좀 있다. 그렇다고 후반에 슬픈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니다.(마지막 문장은 조금 뭉클하게 만들지만.)

 

 책을 덮으면서 이 소설은 단편보다는 장편으로 쓰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쓰는데 하물며 기이한 한 인생을 기록하는데 단편으로 담기에는 짧은 감이 없지 않았다.

 

 아무튼 책을 읽고 나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보단 자연 순리대로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 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몸만 튼튼하게 받쳐준다면 오히려 지혜와 연륜이 쌓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로 웰빙 생활을 해서 힘 펄펄 넘치는 노인이 되는 거다. ㅋ

 

*

 

 

개그맨 정종철 씨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 아들 시후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저런 자상한 아빠가 되는 건 많은 미혼 남자들의 로망인데.

 

 

 

그런데 블로그 메인 사진이 이거네. 코난 친구 포비인가? ㅋ

2009년 2월 28일 토요일

쇼생크 꽃게

1.

 

 언젠가 엄마가 시장에서 꽃게를 잔득 사온 일이 기억난다. 엄마는 우선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꽃게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옮겼다. 그리고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꽃게들이 너무 싱싱하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쌩쌩하게 살아있었다. 그것들은 사방에 감시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탈출을 시도했다. 나는 바가지에 경계선을 정해놓고 선을 넘는 녀석들에겐 따끔한 꿀밤을 선사했다. 제아무리 딱딱한 외피를 입고 있는 꽃게들이지만 내 꿀밤엔 겁을 먹은 눈치였다.

 

2.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갔다가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가지를 뛰쳐나와 탈출을 시도했던 꽃게 한 마리가 문지방 바로 앞에서 굳어있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 꽃게는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탈출을 감행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슬펐지만 사실 좀 웃겼다.(생각해 보라 문지방 앞에 꽃게 한 마리가 저렇게 폼잡고 있는데.ㅋ)

 

 아무튼 간밤에 있었던 녀석의 탈출은 꽤 고된 것이었다. 바가지를 넘고, 식탁에서 뛰어내려야 했고, 부엌을 가로질러 문앞에까지 왔던,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던, 참으로 허무했던 탈출이었을 거다.  

 

3.

 

 그 꽃게의 추모곡으로 겸사겸사해서 프로디지의 'Breathe'를 바친다.

 

4.

 

 

 보너스. 꽃게 얘기가 나왔으니 짤방사진으로 꽃게는 아니지만 훈훈한 '꽃개'사진을 대신할까 합니다.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음성사서함

1.

 

너와 헤어진 지 벌써 8시간이 되어 가.

어제 너와 그 남자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오늘 널 울리고는 많은 것을 느꼈어. 너에 대한 이런 내 감정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거라 생각해.(나만의 착각일 진 모르겠지만)

어제 다른 남자와 있는 너를 본 후 3시간 동안은 내 감정을 도저히 추스릴 수가 없었어. 밤잠까지 설친 것은 물론이야.

너의 공휴일 저녁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 그 사람은 네게 어떤 의미일까?

또 그 사람에게 너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질문들은 새벽이 되어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내가 너에 대한 감정을 더욱 키워가기 전에 내가 너에게있어 어떤 존재인지 귀뜸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러나 넌 또 침묵하겠지.

그래서 난 사랑함으로 바보가 되고 넌 침묵함으로 바보가 되겠지.

우리 둘 다 그렇게 말이야.

 

너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을 아니까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어.

내가 차가운 이성으로 내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가능할 때 내 곁에서 빗겨 서있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선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

그래서 나에 대한 너의 감정을 너도 명백히 할 수 있게 말이야.

그래, 이제 내가 너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을 그만둘까 해.(자신은 없지만)

하지만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긴다면 언제라도 연락해 주길 바래.

그럼 그곳으로 갈 게.

또 네가 원하는 걸 있는 사실대로 말해줘. 그럼 그렇게 할게. 정말이야.

 

그런데, 지금 나 말이야 한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

그 사람의 체온과 목소리가 너무나 그리워.

하지만 난 지금 그럴 수 없어. 내가 네게 귀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만큼 네게 귀찮은 존재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거든.

오늘밤 너는 신을 닮은 것 같아.

나한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잖아.

너무 차갑다. 이 침묵은...

 

-  11년전 한 여인의 삐삐 음성사서함에 어떤 남자가 남긴 사연

 

 

 

2.

 

 

- 역시 십 여년 전 한 남자의 전화기에 어느 여성이 남긴 음성 메세지

 

 

 

 

* 소통이 없는, 소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메세지를 남기는 음성사서함은 무척 쓸쓸한 것 같다. 우주적인 공허함이랄까. 거대한 우주의 구석에 외롭게 박혀 있는 작고 차가운 별 하나가 느낄 법한 뭐, 그런 거.^^;

 

2009년 2월 23일 월요일

밤의 클라라-카트린 로캉드로

 

 클라라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한다. 밤엔 창녀로 일하고, 낮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등 밤과 낮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밤의 클라라와 낮의 클라라 이렇게 따로 부른다. 하지만 어느 날 이 경계는 무너지고 만다. 어떤 남자를 만나면서 말이다. 남자는 처음에 밤의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고객으로 말이다.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이 남자는 클라라에게 편지를 읽어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나는 당신을 원해요. 나는 그 누구도 원한 적이 없어요.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말아요...'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클라라는 편지를 읽어주면서도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엔 남자가 그런 부탁을 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클라라에게 남자의 첫인상은 '이상한 사람'일 뿐이었다. 남자가 클라라에게 원한 건 그 뿐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주는 것.

 그때부터 밤의 클라라와 낮의 클라라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밤의 클라라는 낮의 클라라에 영향을 미치고, 낮의 클라라는 밤의 클라라에 간섭하게 된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낮과 밤의 경계 그리고 떠남. 이 소설의 테마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 소설이 좋다. 읽기 좋은 소설이 좋은 소설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다음 문장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문체. 이미 나는 첫 문장부터 카트린 로캉드로의 문체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생각

 어제는 밤 늦게까지 헤드폰을 쓰고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들었다. 물론 방안의 조명도 최대한 낮게 했다. 그때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혹은 불온전한)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능동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생각들이 나를 찾아왔다는 표현이 옳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편두통처럼 생각들은 불쑥 나를 찾아왔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려 애썼던 것 같다. 아니, 저절로 곤충들처럼 시간을 더듬거렸던 것 같다. 십 여년 전의 일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왠지 나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 펼쳐진 그 기억의 타임라인에는 내가 잃어버린  감각, 희망, 열정 이런 뜨거운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2월 15일 일요일

이별에 대처하는 락음악의 장르별 자세

 

* 저 중에서 내 성향은 아마도 브릿팝과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지 않나 싶다.(나만의 착각인가?^^;) 아무튼 요는 사람마다 사고하는 방식과 행동패턴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장르의 음악이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데스 메탈이나 브루탈 메탈은 표현방식이 과격하긴 한데 그런 형식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부류의 음악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경우가 더욱 많다. 그러니까 저런 잔혹한 표현양식은 감정의 해소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통해 어떤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다.  

 

* 출처 : 모릅네다.

 

 

2009년 2월 10일 화요일

시단소녀

 

 

 베이징 시단시장에 가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시단소녀가 있다. 그녀는 지금 중국 네티즌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사람중 하나다.

 그녀의 이름은 지앙한닝(蒋寒凝). 1990년 1월 중국 사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고향인 그곳에서 음악을 배우고 기타를 익혔다. 2008년 무작정 베이징으로 상경한 그녀는 술집이나 지하철 등에서 노래를 불렀다.

 

 허름한 점퍼, 두꺼워 보이는 츄리닝 바지, 장비라고는 기타 한 대와 작은 엠프 하나. 그녀의 공연은 언뜻 보기엔 그저 초라해만 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공기중에 발산하는 음악은 걷는 이의 발걸음을 저절로 멈추게 할 만큼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 그녀의 노래를 감상해 보자.

 

 

난 특히 이 곡이 더 맘에 든다. 이 곡은 그녀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곡이기도 하다.

 

 

 이 곡도 좋다. 물론 그녀의 창작곡은 아니다. 원곡은 따로 있다.

 

 

 첫번째 노래인 天使的翅膀(천사적시방:천사의 날개, 安琥-안호)의 원곡이다.

 

 

 두번째 노래 不让我的眼泪陪我过夜(불양아적안루배아과야, 齐秦)의 원곡.

 

 

2009년 2월 8일 일요일

푸른 바다의 전설

 노량진수산시장.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면 어느 바닷가 한 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다. 바다 특유의 짠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이곳은 그냥 수산시장이 된다. 사방에는 바다 생물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상인들은 쉴새 없이 소매자락을 붙든다. 한 마리 만원, 두 마리 사 만원, 오 만원, 어떤 것은 칠 만원... 뱃고동 소리처럼 귓전이 웅웅거린다.

 

 우리들은 그저 아무 가게 앞에 멈춰서서 아저씨가 커다란 고무대야에 던져놓은 우럭, 광어, 방어를 각각 한 마리 씩 골랐다. 방어? 나는 처음 보고 또 처음 들어 본 생선이다. 흥정이 거의 성사된다 싶으니까 아저씨는 느닷없이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막대로 생선에게 차례 차례로 치명타를 가했다. 어떤 놈은 즉사했고, 어떤 놈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반쯤 숨이 끊어진 생선들은 곧바로 가게 뒷쪽에 있는 도마위로 올려졌다.

 

 도마는 커다란 통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었다. 하도 오래 써서 그런지 칼날에 많이 찍힌 앞쪽은 움푹 패여져 있었고 도마 전체가 생선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또 도마 끝에는 무시 무시한 식칼이 세로로 꽂혀 있었다.

 

 아저씨는 칼을 뽑아들더니 생선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손놀림에 따라 물고기의 살점이 뚝뚝 나가떨어졌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물고기들은 그렇게 수산시장의 후미진 곳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몸둥아리가 잘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우리들이 정말 저래도 되는 지 궁금해 졌다. 잔혹한 피의 댓가를 언젠가는 치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도 살짝 밀려들어왔다.  저들도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푸른 바다를 헤엄쳤을 텐데 말이다.

 

 푸른 바다에 살던 물고기들은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려 육지에서 산 다음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2009년 2월 4일 수요일

심장에 남는 사람

 

 

 이 영상속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이름은 정설향이라고 한다. 그녀가 상해에 있는 '모란봉'이란 식당에서 '접대원 동지'로 일할 때 이 노랠 불렀다.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접대원 동지'들은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중국에 들어왔으며, 주로 당 간부, 대학교수, 기자, 고문배우들의 자녀라고 한다. 정설향의 부모도 평양 예술단의 가수와 배우라고 한다. 아마 그런 내력으로 그녀는 저렇듯 청아하고 호소록 짙은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지금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녀가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는 동명의 북한 예술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집안, 학벌 좋은 엘리트 애인을 마다하고, 부인을 잃고 두 자녀를 키우며 공장에 헌신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한 여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바이브란 그룹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를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다. 내가 검색해서 알아낸 건.

 

 

 * 작년 말쯤에 포딕스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영상인데 생각보다 쉽게 그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2009년 2월 2일 월요일

2009년 2월 1일 일요일

대사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죽은 듯이 살아.

 

 얼마전 <영화는 영화다>를 본 후 문득 문득 이 대사가 생각난다. 강패(소지섭)가 바다 한 가운데서 상대편 두목을 물에 빠트리기 직전에 했던 말이다. 그때 강패는 입에는 담배를 물고 먼 바다를 바라보며 낮은 음성으로 얘기한다.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그리고 거기서 죽은 듯이 살아. 마치 영화의 한 대목처럼 말이다.

 물론 그때 강패가 한 말은 그가 출연하고 있던 영화의 대본에 있는 대사다. 그는 현실에서 영화대사를 읊조린 것이다. 강패는 그 한 마디 때문에 나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그걸 뒤섞는 다면? 마찬가지로 현실과 상상은 다르다. 그걸 뒤섞는다면?

 

 

2009년 1월 26일 월요일

설국

 눈을 떴을 때, 내가 탄 버스는 눈의 나라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다. 사방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도, 도로 위에도 온통 하얀 눈 뿐이었다.

 나는 신기한 듯 대여섯 살의 어린아이의 눈망울을 하고 창밖만 내다봤다. 그런 내게 눈의 요정들은 환한 웃음을 선사했다. 나는 햇빛을 받아 부서지는 요정들의 웃음소리를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버스는 아까부터 계속 눈밭에서 길을 잃은 사슴처럼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만 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아마 그곳은 눈의 나라 여왕님이 살고 있는 곳이리라. 그곳 어딘가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순수의 문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순백색의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힐 텐데.

 

 밤이 되어 도착한 내 오랜 집은 이글루처럼 변해 있었다. 이글루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누이트 부부 같은 엄마와 아빠가 나를 맞았다. 그렇게 나는 장장 여섯시간 반의 눈의 나라 여행을 마치고 이글루 가족이 되었다.

 

 

 

2009년 1월 22일 목요일

꽃들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처음엔 민중가요인 줄 알았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을 아느냐고 물어왔을 때 저는 정말 꽃다지나 조국과 청춘의 노래를 떠올렸죠. 하지만 동화였습니다. 꽤 유명한 동화라고 하더군요. 동화에 취약한 저로써는 처음 듣는 책이름이었어요.

 트리나 포올러스. 당연히 제가 모르는 작가가 쓴 동화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뚝딱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는데 훌륭했습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어쩌면 아이들은 잘 이해할 수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직장생활을 몇 년 해본 어른들이 읽기 좋은 동화란 생각이 들어지요. 말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란 느낌을 받은 셈이죠.

 특히 문체가 맘에 들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료한 문체. 이 책을 쓴 작가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세상은 분명 꽃과 나비로 가득한 천국이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누구나 맘만 먹는다면 나비가 될 수 있지요. 

 재개발 때문에 다툴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는 그런 천국을 꿈꾸며 리뷰를 마칩니다. 희생된 이들 모두가 봄에 나비로 태어나기를...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기분을 위한 레시피

 딱딱하게 굳은 기분이 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 딱딱하게 굳은 기분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까. 아하. 갑자기 머릿속의 알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나는 우선 빨래집게를 이용해 기분을 빨래줄에 건다. 그런 다음 몽둥이로 기분을 살살 두드린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딱딱하게 굳은 기분에서 우두둑 우두둑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래 기분은 말랑말랑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쉽게 부러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약간의 유연함. 그렇다. 지금 이 작업은 굳어진 기분에 약간의 유연함을 주기 위한 작업이다.

 조금 부드러워진 기분은 저녁 햇살이 비치는 곳에 놓아 둔다. 그리고 오디오에서 음악을 꺼내 채를 썬 다음 살살살살 기분 위에 뿌린다. 그러면 가루처럼 흩어지는 음악은 기분위에서 녹는다. 좋다. 기분은 훨씬 부드러워 졌다.

 기분의 입맛은 아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기분에게 우유와 쵸콜릿을 주자 기분은 한층 부드러워 졌다. 바로 이때 기분을 주물러 줘야 한다. 중국집의 베테랑 주방장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밀가루 반죽을 하듯 기분을 마사지해준다. 다 됐다. 어느새 기분은 마시멜로우처럼 부드러워 졌다.

 

 

 

 

 

 

2009년 1월 17일 토요일

독서

 

 韓國名短編選(한국명단편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중학교에 올라간 기념으로 서점에서 산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게 확실치는 않다. 내가 샀는지 아니면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가 선물한 것인지.

 

 독서, 그러니까 책읽기는 어렸을 때 내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문화였다. 집에 책이라고는 전화번호부와 족보가 전부였다. 또 책을 오 분 이상 들여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아무래도 난 티브이를 보거나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좋았다.

 

  그 단편집을 거의 일 년에 걸쳐 읽은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그나마 오 분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펴면서 읽은 게 그정도다. 당연히 책에서 어떤 감동 같은 걸 느끼는 건 무리였다. 대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옛날 소설만 읽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그 단편집에 나온 소설들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과서를 봐도 시인이란 윤동주, 이육사 이런 사람들의 시만 실려 있으니 현재에 시를 쓰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때 내 문화 수준은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무지했던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다른 문화에 대해 좀 더 깨어있었던들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스물 두 살때부터였다. 스물 두 살, 그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고 예정대로 군대에 입대했다. 그 일년동안의 자양분이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 많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톨스토이의 <예술론>, 김승옥 소설 전집,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이 그때즘 읽었던 책들이다. 사실 책보다 더 사랑한 건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느라 새벽 세 네시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지금 내가 가장 취약한 건 동화다. 나는 제대로 읽어본 동화책이 별로 없다. <피터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작년에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열 살 전후의 나이에 내가 동화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상상력이 좀 더 풍부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2009년 1월 13일 화요일

<꽃남>이 일깨워 준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다.

 

 얼마 전 <그들이 사는 세상>이 끝나던 날, 다음 드라마 예고편이 화면에 소개됐다. <꽃...> 어쩌구 저쩌구 하는 제목의 드라마였는데 예고편을 단 몇 초만 보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뭐, 저딴 걸 하냐' 그렇게 나는 절대 저 드라마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진짜 유치하고 볼만한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다 보니 나름 재밌는 부분도 있었다. 구혜선도 꽤 귀여운 캐릭터로 나왔다. 알고 보니 원작이 만화였던 것이다.

 

 <꽃보다 남자>의 최대 단점은 유치함이다. 그러니까 '유치한 것'='나쁜 것'이란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볼만한 드라마다. 주성치 영화에서 유치함은 오히려 매력이듯이 말이다. 나는 오히려 이 점이 신선했다. 드라마를 <톰과 제리>처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꽃남>이 더욱 더 만화적인 느낌으로 치장하길 바란다. 현실에선 말도 안 되는 장치, 효과음을 더 팍팍 써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정말 미래는 알 수 없다. 내가 <꽃남>을 보게 되다니...

 

 

 

 

 

적과 진실

 

  적을 너무 많이 만들면 언젠간 그 적들에 의해 곤경에 빠지게 된다. 미네르바가 그렇다. 미네르바는 그동안 아군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만큼 적들 또한 많이 만들었다. 적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바람으로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할 수 없다. 아무리 세차게 불어재껴도 말이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할 수 있는 건 온화한 태양이다.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고 연못으로 풍덩 뛰어들 게 할 수 있는 태양.

 

 진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허위사실 유포가 인정됐으니 진실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플라톤은 이 세상은 가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진실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했다. 정부와 검찰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왔니?

 

 

 

2009년 1월 8일 목요일

로마신화에 나오는 어느 여신의 체포

 검찰이 미네르바를 체포한 건 그가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 봐라. 너희들이 추종하는 미네르바라는 환상의 실체를. 그의 학력과 직업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란 말이다. 어때, 학력은 형편 없고 직업도 변변치 않구나. 너희들은 속은 거야. 쟤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지.

 아마 검찰은 이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모니터 위에 옮긴 글들이 모두 거짓이었을까? 내가 알기로 미네르바는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유명인사가 된 걸로 알고 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와 비견되는 예언가가 아니었던가.

 그의 글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신동아에 기고한 글은 한 번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물론 나는 겨우 경제관련 학부를 졸업했을 뿐이지만 내가 보기에도 상당한 경제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네르바가 알려진대로 50대의 전직 금융인 출신이었다면 검찰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의 대단한 경력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더욱 더 그를 믿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여신처럼 디지털 세계를 유영하는 미네르바라는 존재가 무척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학벌이 좋지도, 경력이 화려하지도 못했다. 검찰이 판단하기에 여신의 조건에 부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체포된 것이다.

 

 검찰은 줄곧 미네르바라는 경제 아이콘의 처형을 원했고 결국 그를 단두대 앞까지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 검찰에게는 축하할 일이다. 당신들 각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나같은 사람은 그런 총애가 역겹다.

 

 

 

2009년 1월 4일 일요일

유명인의 서재

 


<공지영 작가의 서재>

 

탁자와 의자가 고풍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한 쪽 벽 전체가 창인 것 같은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좋은 것 같다.



 


<김용만 씨의 서재>

 

깔끔하게 잘 꾸며놓은 것 같다.


 


<박경철(시골의사) 씨의 서재>

 

서점의 한 쪽 구석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이런 식으로 쌓아놓는 분들이 독서를 진짜 많이 하는 분들이다. 얼핏 봐도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쌓여있는 것 같다.



 


<신경숙 작가의 서재>

 

넓은 책상 그리고 노트북까지. 전체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서재다. 저런 데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 맛이 더욱 좋을 듯. 작가님, 집필중이시군요.



 


<정이현 작가의 서재>


 

서재라기 보다는 책장 하나 정도. 실제로 정이현 작가는 책 모으는 것에 취미가 없다고 한다. 책은 보통 한 번 읽거나 많이 읽으면 세 번 읽게 되는데 특별히 모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 다 읽은 책은 남에게 준다고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책들을 평생 한 번 씩만 읽지 않는가.

 

 

2009년 1월 3일 토요일

큐피트의 화살

 만약 당신이 좀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당신의 동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가진 동선의 특징 때문에 어쩌면 당신은 사랑을 놓쳐버린 게 한 두 번이 아닐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다시피 큐피트는 명사수가 아니다. 큐피트는 윌리엄 텔처럼 활시위를 힘껏 당겨 눈으로 뚫어지게 목표물을 응시한 다음 비로소 활시위를 놓는 것은 아니다. 큐피트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활시위를 당긴 다음 대충 목표다 싶은 곳을 향해 활을 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동선이 조금만 어긋나도 큐피트의 화살은 당신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돌이켜 보라. 당신에게 화살이 스친 적이 있는 지를. 어쩌면 당신은 여러 번이나 큐피트의 화살을 무의식적으로 피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큐피트는 게으르기 때문에 잘 못 쏜 화살을 다시 정조준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곧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떠나버린다. 그가 다시 언제 나타날 지 기약도 없다.

 

  당신은 좀 더 상대방 가까이에서 동선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길게 대화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큐피트는 당신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활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즐겁게 오랜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당신이 대화에 푹 빠져 있는 동안 큐피트는 살며시 다가와 당신의 가슴 한 켠에 한방 그리고 상대방의 가슴 한 켠에 한방, 금촉 화살을 날려줄 것이다.

 

* 단,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큐피트는 장난꾸러기이기 때문에 금빛(사랑)이 아닌 납빛(증오)의 화살촉을 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