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3일 일요일

힘의 법칙

 붐비는 지하철역 안. 수많은 인파속에 댄디 스타일의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유독 눈에 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그 남자는 애인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그와 걷고 있는 여자친구 역시 막 텔레비전에서 튀어나온 연예인인 것처럼 예쁜 외모를 갖고 있다. 멋진 이 두 남녀는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한 남자와 부딪힌다.


 3분 후.


 별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는 여느때처럼 별볼일 없이 역안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저 앞에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멋진 남녀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이 별볼남은 조금은 부러운 시선으로 또 조금은 시기심어린 시선으로 점점 가까워오는 남녀를 바라본다.  

  별볼남이 넋놓고 두 남녀를 바라보는 사이 멋진 남자가 별볼남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순간 별볼남은 열등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별볼남은 상대에게 대들만한 용기는 없다. 별볼남은 그저 멋진 남자를 한 번 째려보는 것으로 자신의 성깔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멋진 남자 역시 별볼남을 무섭게 노려봤기 때문이다. 깨갱깨갱. 별볼남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별볼남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 건 자신을 노려본 멋진 남자보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별볼남이 고개를 숙일 때 벌레를 대하듯 양미간을 찌푸린 여자의 표정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역을 빠져 나온 멋진 두 남녀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둘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여자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켰다. 실내엔 경쾌한 라틴풍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두 남녀가 각자의 잔에 담긴 커피를 반쯤 비웠을 때 카페 안으로 어떤 남자가 들어섰다. 그 남자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린 후 멋진 두 남녀가 있는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남자는 바로 별볼남이었다. 별볼남은 뭔가를 감싸안은 듯 한 팔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테이블 앞으로 다가온 별볼남에게 멋진 남자가 물었다. 멋진 남자는 정말 별볼남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빚 갚으러 왔다. 움직이지 마!"


 별볼남은 가슴에 품었던 권총을 멋진 남자에게 들이댔다. 총구는 정확히 남자의 이마를 향하게 했다. 남자의 여자친구가 비명을 지르자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들도 상황파악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다들 조용히 해!"


 순간 카페안은 침묵이 흘렀다. 음악도 누군가 꺼버린 모양이었다. 카페 안은 이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부터 한 마디라도 뻥끗대는 놈있으면 대갈통을 날려버리겠어!"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이마에 권총을 들이댄다면 개처럼 엎드려 신발이라도 핥게 할 수 있다. 



 "너, 무릎 꿇어! 어서!"


 별볼남은 총구를 위아래로 흔들며 멋진 남자에게 명령했다. 멋진 남자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이리 기어와서 혀로 내 신발을 핥아."


 별볼남은 더욱 더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 멋진 남자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겁은 났지만 멋진 남자는 잠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 안의 모든 시선이 무릎꿇은 멋진 남자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볼남의 요구대로 혀로 그의 신발을 핥는다면 멋진 남자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내 말 안 들려 새꺄!"


 별볼남은 즉시 검지손가락을 방아쇠에 갖다대며 위협했다. 멋진 남자는 이제 더이상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못하다간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는 별볼남의 신발을 핥기 시작했다. 

 '그런데, 혹시 저거 가짜 총 아닐까?' 혀로 별볼남의 신발을 핥던 멋진 남자의 뇌리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유는 알 순 없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멋진 남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이새끼, 그거 가짜 총이지?"


 멋진 남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별볼남을 향해 소리쳤다. 일단 용기는 냈지만 멋진 남자는 속으로 엄청 떨고 있었다. 만약 진짜 총이라면 그대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볼남의 행동은 뭔가 미적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 진짜 총야 임마. 까...까불지 마."


 별볼남은 한 발짝 물러서며 말까지 더듬었다. 그제서야 멋진 남자는 총이 가짜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뻥쳐. 그거 가짜 총 맞구만!"


 멋진 남자는 재빠른 동작으로 별볼남을 제압했다. K-1 선수처럼 손으로 힘껏 별볼남의 목을 휘어감았다.  


 "야, 이거 안 놔! 아, 아퍼 아퍼."


 멋진 남자는 주먹으로 연신 별볼남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럴 때마다 별볼남은 죽을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 아퍼. 거기 혹혹. 아아, 이새끼가 때린데 또 때리네...아, 아야!"


 카페 안은 어느새 별볼남의 비명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별볼남이 멋진 남자에게 두들겨 맞을 때마다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어떤 사람은 박수를 치며 응원하기도 했다.


  힘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힘은 이동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그리고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댓글 7개:

  1. 또한 용기의 유무에 따라 움직이죠 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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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헐 이게 무슨 내용이죠 ㅋㅋ 직접 겪으신건가. 그럼 멋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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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힘을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 좀 더 오래 머무는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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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띠용 - 2008/11/24 00:10
    그렇죠. 그것도 우주의 법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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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여담 - 2008/11/24 01:21
    걍 생각나서 쓴 거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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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주이 - 2008/11/24 01:53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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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trackback from: 따뜻한 차한잔에 사랑 한모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나아가는 것, 또 하나는 물러서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는 이 순간에 구분된다. 어디로도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자신을 세워라. 그것은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과 기회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하여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벼랑 끝에서 나를 단련하라.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은 시--- 어려울 수록 더 단단하게 나를 단련시키려면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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