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名短編選(한국명단편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중학교에 올라간 기념으로 서점에서 산 걸로 기억한다. 사실 그게 확실치는 않다. 내가 샀는지 아니면 우리 가족 중의 누군가가 선물한 것인지.
독서, 그러니까 책읽기는 어렸을 때 내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문화였다. 집에 책이라고는 전화번호부와 족보가 전부였다. 또 책을 오 분 이상 들여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아무래도 난 티브이를 보거나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좋았다.
그 단편집을 거의 일 년에 걸쳐 읽은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그나마 오 분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펴면서 읽은 게 그정도다. 당연히 책에서 어떤 감동 같은 걸 느끼는 건 무리였다. 대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옛날 소설만 읽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정말 터무니 없는 궁금증이었다. 나는 그 단편집에 나온 소설들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교과서를 봐도 시인이란 윤동주, 이육사 이런 사람들의 시만 실려 있으니 현재에 시를 쓰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때 내 문화 수준은 딱 그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무지했던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다른 문화에 대해 좀 더 깨어있었던들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스물 두 살때부터였다. 스물 두 살, 그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고 예정대로 군대에 입대했다. 그 일년동안의 자양분이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 많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톨스토이의 <예술론>, 김승옥 소설 전집,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등이 그때즘 읽었던 책들이다. 사실 책보다 더 사랑한 건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느라 새벽 세 네시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지금 내가 가장 취약한 건 동화다. 나는 제대로 읽어본 동화책이 별로 없다. <피터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작년에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열 살 전후의 나이에 내가 동화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상상력이 좀 더 풍부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