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젠가 엄마가 시장에서 꽃게를 잔득 사온 일이 기억난다. 엄마는 우선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던 꽃게들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옮겼다. 그리고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꽃게들이 너무 싱싱하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쌩쌩하게 살아있었다. 그것들은 사방에 감시의 눈이 주시하고 있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탈출을 시도했다. 나는 바가지에 경계선을 정해놓고 선을 넘는 녀석들에겐 따끔한 꿀밤을 선사했다. 제아무리 딱딱한 외피를 입고 있는 꽃게들이지만 내 꿀밤엔 겁을 먹은 눈치였다.
2.
다음 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갔다가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가지를 뛰쳐나와 탈출을 시도했던 꽃게 한 마리가 문지방 바로 앞에서 굳어있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 꽃게는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탈출을 감행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슬펐지만 사실 좀 웃겼다.(생각해 보라 문지방 앞에 꽃게 한 마리가 저렇게 폼잡고 있는데.ㅋ)
아무튼 간밤에 있었던 녀석의 탈출은 꽤 고된 것이었다. 바가지를 넘고, 식탁에서 뛰어내려야 했고, 부엌을 가로질러 문앞에까지 왔던,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던, 참으로 허무했던 탈출이었을 거다.
3.
그 꽃게의 추모곡으로 겸사겸사해서 프로디지의 'Breathe'를 바친다.
4.



보너스. 꽃게 얘기가 나왔으니 짤방사진으로 꽃게는 아니지만 훈훈한 '꽃개'사진을 대신할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