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4일 수요일

미술관 옆 동물원

 "저기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의 한 쪽을 빼면서 여자가 내게 물었다. 그 여자는 내 맞은편에서 걸어오다 마침내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말을 건 것이다.

 왜 그러는 걸까. 아주 잠시 후면 그 여자가 나를 부른 이유가 밝혀질 텐데 왠지 나는 조바심이 생겨 물었다.

 

 "네, 왜 그러시죠?"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자 조바심은 더욱 커졌다.

 정말 왜 그러는 걸까. 길을 물으려는 걸까. 혹시 도를 아느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진득하니 일 초만 기다린다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텐데도 나는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올 다음 말이 몹시 궁금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XX미술관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도서관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혹시 어렴풋이 내가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머릿속에 있는 검색엔진을 총동원해서 기억을 샅샅히 뒤져봤다. 하지만 머릿속이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됐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분명 미술관이라고 그랬다. 미술관 같은 곳에 내가 갈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난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미술관도 모르는 야만인(?)이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아, 거기 알아요. 동물원 옆에 있는 곳 말씀하시는 거죠?"

 

 왜 하필 동물원이 불쑥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번엔 여자 쪽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머, 그 옆에 동물원이 있나요?"

 

 "그럼요. 미술관 옆 동물원이죠."

 

 아마 한 줄기의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면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찢을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린 다음 우리 머리 위로 난데 없는 폭우가 쏟아졌을 것이다. 장마철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날씨는 너무 맑았고 계절은 이제 막 삼 월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었다.

 

 "아, 네."

 

 "네."

 

 우리는 짧은 목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길을 갔다. 나는 그녀를 스치면서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꼭 동물원이 옆에 있는 미술관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그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하며 나를 스쳐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혹시 미술관 옆에 정말로 작은 개집이라도 있어 나의 수준 높은 유머에 탄복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는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삼월이 시작된 거리를 힘차게 걸어갔다.

 

 

댓글 7개:

  1. 심은하세대신가요.

    농담으로 여길 정도니 심은하 세대는 지난 듯.

    그런 농담은 삼가하심이.

    끔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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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쁨 - 2009/03/04 09:15
    설마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죠?^^ 걍 픽션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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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드라마의 한 부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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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띠용 - 2009/03/04 19:58
    잼없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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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도 순간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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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Heoni - 2009/03/05 23:43
    ㅎ 이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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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착한영 - 2009/03/07 00:35
    영화 하나 만들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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