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청령포

 단종은 수양대군에 의해 이곳 영월땅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된다. 그당시 영월은 전체 인구가 700명 안팎일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였다. 게다가 청령포는 뒤로는 큰 산과 앞과 옆으로는 강으로 막혀있어 섬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단종은 근처에 있는 소나무 기둥에 앉아 한양쪽을 바라보며 자주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때로는 통곡하며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이 자주 걸터앉았던 그 나무는 단종의 고통을 함께한 나머지 기형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단종의 슬픔을 곁에서 지켜봤다고  해서나중에 '관음송'이라고 이름지어진 그 소나무는 정말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권에 눈이 먼 숙부에게 사약을 받고 죽어야만 했던 그의 기구한 인생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종의 운명보다 시녀들의 운명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단종에 집중했지만 나는 시녀들의 삶에 집중한 셈이다. 단종의 운명이 기구하긴 하지만 어찌됐건 그건 자기 집안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시녀들은 그 싸움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녀들은 한창 나이에 단종과 함께 이곳 청령포로 유배를 온다. 유배지에서 그녀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 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바느질, 청소, 땔감준비, 식사준비. 근처에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유배지에서 쌀과 반찬은 어디서 공수해 오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유배지라는 특성상 맘편히 웃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종이 죽은 후에 강물에 몸을 던져 도리를 다했다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조선왕조 500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권력을 향한 탐욕과 암투가 심했던 500년이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삶이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생이 있을 것이다. 


 

댓글 2개:

  1. 단종도, 궁녀도 참 안타까운 삶이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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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띠용 - 2008/10/23 20:13
    네,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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