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 얇고도 가까운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죽었다는 이유로 유명 여배우는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단 한 마디의 인터뷰도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녀가 그동안 겪었던 시련과 고통에 비한다면 지금 떠도는 유언비어는 그 강도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최근에 강한 모성애와 함께 억척 같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런 이미지의 그녀가 택한 것이 자살이라니...
아마도 최근에 그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서버린 것 같다. 과거의 고통이라는 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퇴적층처럼 쌓인다. 그리고 그 퇴적층은 쌓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결국 그 한계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2.
스무 살 여름방학때였나. 그날은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선배 혹은 동기가 무심코 내뱉은 나의 단점이나 약점들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때 정말 변신을 꿈꾸었다. 한 30일 정도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길 간절히 원했었다. 변신. 그때 내 삶의 화두는 단연코 변신이었다.
3.
어제 동기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보는 선배도 있었다. 2년, 5년, 많게는 7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두 가지의 감정이 뒤엉켜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반가움이었고 또 하나는 괴로움이었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동안 나는 예전에 변신을 꿈꾸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변신을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애벌레로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각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괴로웠다.
4.
나를 길옆에 내려 놓기 위해 차가 핸들을 틀었을 때, 택시 한 대가 우리가 탄 차를 거의 스치듯 가까이 지나갔다. 내가 차창을 통해 택시를 노려봤을 때 그 차는 이미 수십미터는 멀어져 있었다. 차에 탔던 우리 넷(선배, 나, 동기, 후배)은 정말 놀랐다. 그 택시와 우리가 탄 차의 경계는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만큼이나 가까웠었다. 운명이 우리들을 삶의 경계선 안쪽으로 밀어넣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살면서 내가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신호라고 여기기로 했다.
전 국민이 잘 아는 한 사람의 잘못을 전 국민이 알고 그 사실은 단순히 남은 삶동안 일상생활을 하는 데 뿐만 아니라 남은 삶동안 직장생활을 하는 데도 큰지장을 주는 게 확실했으니 앞으로 혼자 묵묵히 감당해내기에는 스트레스가 컸을 겁니다.
답글삭제님은 그에 비하면 뭐라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 그만한 고통은 아닐건데 괜히 묻어가고 싶으신건지...ㅋㅋㅋ
본 모습과 다르게 굳어져 버린 이미지는 연예인이나 일반인이나 괴로운 일이네요.
답글삭제@기쁨 - 2008/10/04 05:43
답글삭제그러게요. 묻어가려는 듯. ㅋㅋ
@주이 - 2008/10/04 13:01
답글삭제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진화해야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죠.
집에서 키보드 붙잡고 있는애들 자기가 사람 죽이는거 알기나할지 (-_-)
답글삭제설마죽겠어하고 올리겠죵 아오 정신나간녀뇬들
@여담 - 2008/10/06 21:32
답글삭제악플은 이래저래 해로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