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스쿠터가 달린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 주인을 알 수 없는 스쿠터 한 대가 공터 구석에 세워졌다. 그날 이후로 스쿠터는 공터의 일부가 되었다. 스쿠터는 공터의 벤치와 마찬가지로 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았고, 바람이 불면 어딘가 앓는 소리를 냈다. 가끔은 불량끼 있는 동네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낡을대로 낡아 있던 스쿠터는 당장 폐차시켜도 될 만큼 엉망이 되고 말았다. 헤드라이트는 부서져 밖으로 튀어나왔고, 안장은 예리한 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타이어는 펑크가나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흉물 그자체였다. 그 누구도 저 스쿠터가 다시 부릉부릉하는 엔진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를 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쿠터는 이제 스쿠터로 추정되는 고물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잔득 녹이 슨 스쿠터의 배기통 안으로 씨앗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아마 공터 너머에 있는 꽃집에서 날아든 씨앗이었을 것이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이곳 공터에까지 날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다 낡아버린 스쿠터의 배기통 속으로. 씨앗에게는 불운이라면 불운 일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스쿠터의 배기통 속으로 들어간지 며칠이 지난 후 스쿠터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도 스쿠터에 손을 댄 적이 없는데도 스쿠터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서졌던 헤드라이트는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고, 안장과 배기통도 망가지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냥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스쿠터의 전체적인 모습은 새것처럼 변해있었다.

 

 지금 스쿠터가 있던 공터는 텅 비어있다. 스쿠터는 그날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것의 몸으로 변신한 스쿠터는 서서히 엔진 소리를 내더니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릉부릉. 스쿠터는 좀 더 엔진 소리를 높였다. 스쿠터의 경쾌한 엔진음이 공기를 갈랐다. 스쿠터는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공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터를 벗어난 스쿠터는 탁 트인 도로로 질주했다. 스쿠터의 모습은 점점 멀어졌다.

 

 그날 이후 텅 빈 공터를 바라보면 스쿠터가 달린다.

 

 

댓글 6개:

  1. 너와 달리는게 좋아~ 베이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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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창작 동화인건가요? 포근한 그림이 연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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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벼라 - 2009/11/04 17:26
    감사.^^(동화는 아니고 그냥 잡생각을 적은 거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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