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9일 일요일

군대스리가의 추억

 오른쪽 코너 플랙 근처에서 강상병이 크로스한 볼이 내가 서있던 문전 중앙 쪽으로 날아올 때, 어쩐지 저 공이 꼭 나에게로 올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정말로 공은 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장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볼을 가슴 트래핑한 후 슛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골문을 향해 다이렉트로 차넣을 것인가. 나는 짧은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 상황에서 나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마음은 평온했고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공이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날아왔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허공 위로 날렸다. 그리곤 지체 없이 발로 공을 힘껏 때렸다. 시저킥이었다. 내가 찬 공은 골대 좌측 상단의 구석진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물이 미친듯이 출렁거렸다. 전혀 손을 쓸 수 없었던 골키퍼는 연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군대스리가 마지막 골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후에 나는 전역했다.

 

*

 

 내가 군대스리가의 첫경기를 경험한 것은 입대한 지 백 일이 조금 지난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고참 심부름에 한해 PX 출입이 허가되고, 선임병에게 보고하지 않고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짬밥이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난 내무반의 막내였다.

 

 내가 취사반에서 PET병에 얼린 물을 한 아름 받아왔을 때 고참들은 막 전반전을 끝내고 하프타임을 보내기 위해 그늘이 있는 락커룸(연병장 사열대)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대다수의 고참들은 걸어오면서 이미 웃통을 벗어제쳤다. 빨갛게 익은 몸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모습은 꼭 뜨겁게 익은 군고구마의 껍질을 벗긴 모습을 연상케 했다.

 

 "얌마. 뭐가 힘들어. 전반 내내 걸어다니더만."

 

 분대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널부러져 있는 고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 지고 있는 상태로 전반을 마친 모양이었다. 분대장이 소리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라이벌 내무반과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분대장부터 왕고, 투고, 쓰리고까지 돈을 모아 내기를 하는데 지면 당연히 자기 돈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군인들 용돈 다 모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자존심도 좀 걸려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까. 테니스병 오현록이 저놈이 오면 두 세명이 무조건 달려들라니까. 왜 어물쩡 거리고 있냐."

 

  분대장은 지쳐서 헐떡 거리며 누워 있는 고참들을 향해 별로 작전이랄 것도 없는 작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김상훈이!"

 

 "예, 이병 김상훈!"

 

 "너, 그딴식으로 밖에 못하냐. 왼쪽이 뻥뻥 뚫리잖어 임마!"

 

 분대장은 급기야 내 바로 윗고참인 김이병에게 집중포화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몸이 굼뜨고 말투가 어눌한데다가 실수를 밥먹듯이 해서 고참들로부터 이미 찍혀 있는 상태였다. 내가 자대배치를 받기 전부터 그는 이미 찍혀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반 고문관이었던 셈이다.

 

 "분대장님, 시원한 얼음물 가져왔습니다."

 

 나는 깨끗한 컵에 얼음물을 따르며 분대장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고생이 많다."

 

 분대장은 김이병을 혼내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단숨에 물 한 컵을 비웠다.

 

 "그런데, 너 공 좀 찰 줄 아냐?"

 

 빈 컵에 새물을 따르던 내게 분대장이 느닷 없이 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잘 못 찹니다"라고 신참내기 특유의 겸손을 떨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예, 조금 찰 줄 압니다!"

 

 그렇게 당돌하게 대답했다. 뒷통수에서는 김이병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오호, 그래? 후반전엔 막내 니가 뛴다. 김상훈이 넌 물이나 떠와 섀꺄!"

 

 이렇게 해서 이날 나는 군대스리가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물론 그날 우리 팀은 전반에 벌어진 점수차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분대장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점호시간에 분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막내 너는 미드필더로 뛰어라이."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던 것이다. 7급 공무원을 갑자기 차관급 위치로 격상시키는 정도의 파격이었다.

 

 다음 날 고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대 내무반 분대장이 나의 플레이를 극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분대장이 뿌듯해 했다는 후문이다. 감독 겸 구단주(분대장)의 신임을 얻게 된 나는 이후 라이벌 매치에서의 압승은 물론 각종 대대 컵대회와 포상휴가를 거머쥐며 물오른 활약을 펼치게 된다.

 

 

댓글 8개:

  1. 와우~! 군대스리가의 영웅이셨군요?

    언제 시간나실 때 사인이라도...^^;;



    뭐 다음편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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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우 군대스리가에서 짱드셨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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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띠용 - 2009/07/20 00:32
    써놓고 보니 엄청 잘 한 것처럼 보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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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찌할가 - 2009/07/20 00:14
    송구스럽습니다. ㅋ 시간나면 대대컵 결승 얘기를 함 써보죠. 수중전이었는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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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와 재밌게 읽었어요 ㅋㅋ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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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olorFilter - 2009/08/02 10:46
    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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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군대스리가에서...해설자로 맹활약했었는데;;스타에 입스타가 있다면 축구도 입축구가 있죠..군대스리가 해설을 시작으로



    유럽축구랑 국내축구 아시안 컵까지 중대 자체해설을 맡았었죠..훗훗...축구는 발로만 하는 것은 아니죠..ㄱㄱ







    단....발이 개발이어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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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ShellingFord - 2009/08/03 02:09
    해설 이게 또 만만한게 아니죠.^^ 아무튼 군대스리가는 대단히 큰 리그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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